
목 차
지인들로부터 법률과 관련된 문의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그중 상당수는 자신의 사례를 “재판까지 가면 당연히 이기는 사안”이라고 확신하면서, 이미 낙관적인 결론을 전제로 질문을 한다. 세상에 “당연히 이기는” 소송이 있을까?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심지어 판결을 하는 판사라도 마찬가지다.
법률상식, 결론 정해놓고 질문하지 말라
법이란 어렵고 두렵고 힘들다. 보통 사람들에겐 그렇다. 마치 한밤중에 어두컴컴한 동굴 속을 걷는 기분이리라. 혹시 웅덩이나 비탈은 없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도대체 이 동굴은 언제 끝나는지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변호사나 법무사 등 다양한 공간의 전문가들에게 묻고 또 묻게 된다. 그런데 자문을 구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이들이 많다. 가장 위험한 부류는 어설프게 알고 있는 내용으로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질문하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이런저런 내용으로 고소가 가능한지’를 질문해놓고, 법을 아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답변하면 “포털 사이트에 확인해보니 가능하다던데요”라거나 “제가 아는 변호사가 된다고 말했는데요”라고 반박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애초에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 법을 적용하는 과정은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답을 내릴 수 없다. 소송에도 변수가 많다. 돈을 분명히 빌려주고도 증거가 부족해 못 받는 경우도 있고, 억울하게 돈을 물어주게 되는 일도 생긴다. 사소한 잘못을 방치해 전과자가 되기도 한다. 법전과 현실은 다르다. 법을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신중하게 답변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예를 보자. 단체 채팅방에서 언쟁을 벌이다가 실수로 거친 말을 뱉고 말았다. 상대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로부터 “아무 일 없을 것이다”라는 답변을 들었다면 심리적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채팅방에서 남을 비방하거나 욕설을 하면 형사상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될 수도 있고, 민사상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설사 상대의 잘못이 더 크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정당방위’나 ‘정당행위’가 적용되기란 쉽지 않다. 이럴 경우는 섣부른 법적 지식을 앞세워 “법대로 맞서겠다”고 하기 전에, 진심 어린 사과로 고소를 막는 일이 상책일 수도 있다. 스스로 답을 알고 있다면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 자신이 아는 대로 소송을 하면 된다. 그런데 잘 모른다면, 열린 마음으로 묻고 답해야 한다. 자문을 구할 때는 최소한 스스로 기본 정보나 지식은 익히고 물으라. 그래야 진지한 답변, 도움이 되는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답변을 정해놓고 질문하지 말라.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어설픈 지식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무료상담을 받건 변호사를 만나건 마찬가지다. 또 한 가지, 인터넷에는 올바른 정보보다 잘못된 지식이 훨씬 많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 무책임한 답변이 넘쳐난다. 맹신은 금물이다. 법 조항과 판례 검토, 전문 서적 읽기, 전문가 조언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해볼 것을 권한다.
나홀로 소송을 계획한다면
요즘 들어 변호사나 법무사 등 법률 전문가의 도움 없이 ‘나홀로 소송’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갈수록 법률정보가 공개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법률용어와 재판절차를 스스로 터득해가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 한마디로 대단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 단순히 비용을 아낀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준비나 법률지식 없이 무작정 덤볐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절차를 잘 몰라서 불필요하게 재판을 오래 끌게 되거나, 이길 수 있는 소송도 패소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는 적절한 법률적 대응을 하지 못해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도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재판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다. 가끔 언론에서는 나홀로 소송에서 어렵사리 승소한 당사자를 인간 승리로 추켜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몸과 마음의 고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재판인지 잘 판단하라
나홀로 소송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치밀한 사전준비가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재판인지 아닌지를 잘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혼자서도 이길 가능성이 있는지, 재판에 투자할 시간적인 여유가 되는지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판단이 섰다면 자신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재판과 관련한 기본 법률지식을 갖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터넷에서 대한민국법원 홈페이지를 비롯하여 법률 사이트를 뒤져보면 이 정도 사항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재판은 시간과 노력의 싸움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꼼꼼히 챙기고 법원에서 요청한 사항은 반드시 기간을 지켜 이행해야 한다. 법원에서 보낸 서류에 적힌 유의사항을 꼼꼼히 읽어보고, 의심이 가는 점은 법원에 전화를 걸어서 꼭 확인한다. 법정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수고도 감수해야 한다. 한 번이라도 재판에 빠지면 그만큼 승소 가능성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소액재판은 법정에서 판사들이 법을 잘 모르는 당사자들에게 입증 방법에 관해 간접적으로 조언을 해주거나 힌트를 줄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증인신청, 문서제출, 사실조회 등을 권유한다면 잘 새겨들어야 유리하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증인을 세우거나 추가 입증자료를 내기는커녕 기존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사람은 재판 결과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왜 억울한가』라는 책을 쓴 유영근 판사는 “재판에도 축구와 같은 게임의 요소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아무리 작은 소송이라도, 결론이 뻔해 보이는 재판이라도 성의 있게 대응하지 않으면 예상보다 불리한 결과를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감당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전문가를 찾아라
이런 노력을 할 자신이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전문가를 찾는 편이 낫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소송은 과감하게 법률사무소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의료소송ㆍ건축소송ㆍ토지소송 등 전문 분야, 입증이 어려운 손해배상 사건, 수억 원대의 소송 등은 변호사를 찾아가길 권한다. 또한 형사사건으로 구속될 위기에 처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법률 자문을 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홀로 등기’도 마찬가지다. 말소등기, 표시변경등기 등 간단한 등기는 등기소에서 제공하는 양식을 작성한 후 세금과 수수료를 납부하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반인이 하기 어렵거나 시간이 많이 드는 까다로운 등기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민ㆍ형사 소송 건수는 600만여 건에 달한다. 이 중 민사사건이 약 70%를 차지한다. 소송이 아닌 등기 사건도 1,000만 건이 넘는다. 어림잡아도 1년에 수백만 명이 법원을 찾게 되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과 책임을 법률 소비자의 몫으로만 돌리는 건 적절치 않다. 법률 전문가의 역할도 중요하게 대두된다.
변호사 3만명 시대, 법률 서비스 현주소는
2022년 10월 기준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는 3만 469명이다. 이 중 휴업 중이거나 개업을 하지 않은 준회원 5,505명을 제외하더라도 2만 4,964명의 변호사가 활동 중이다. 2022년 10월 현재 전국의 법무사는 7,259명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생기면서 변호사 숫자가 크게 늘어난 결과가 이렇다. 법률 전문가들 입장에서 본다면 예전에 비해 수입이 많이 줄었겠지만, 인구 대비 법원 사건 수를 고려할 때 결코 법률 시장이 좁다고 보기는 어렵다. 변호사, 법무사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고객유치를 위해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나홀로 소송이 계속 늘어나는 것보다 송사를 법률 전문가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맡기는 문화가 정착되는 게 이상적이라고 판단한다. 법률 전문가들도 지금보다 문턱을 낮추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야 할 때가 왔다. 법률 소비자인 국민들이 법률 절차를 잘 몰라 자신의 권리를 빼앗겨서는 안 되지만, 복잡한 소송을 혼자 해결하겠다고 생업을 포기한 채 송사에 매달리는 것도 결코 권장할 일은 아니다. 앞으로는 유능하고 믿음직한 변호사, 실력 있는 법무사에게 맡겼더니 싼값에 편하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소송구조나 법률구조 외에,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승소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도 지금보다 늘어나야 한다. 나홀로 소송을 하겠다면 단단히 각오하고 제대로 준비해서 시작해야 한다. 만일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유능하고 저렴한 법률 전문가를 활용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당연히 이길 수 있는 소송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