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의 ‘부모 빚 평생 대물림’ 사라질까 _ [민법 한정승인 개정] 미성년 상속인의 자기결정권 및 재산권 보호

민법상 성년이 되는 나이는 만 19세다. 부모(법정대리인)의 보호ㆍ감독으로부터 벗어나는 나이다. 그 이전까지는 미성년자 스스로 계약이나 거래 등의 법률행위를 할 수 없다. 민법(제5조)은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하려면 원칙적으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이를 위반한 행위는 취소할 수 있도록 정했다. 아직은 미성숙한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미성년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망한 부모의 빚을 떠안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빚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일도 자주 발생했는데, 이것이 상속과 관련된 법률의 맹점으로 지적됐다. 피해 사례가 속출하자 최근 국회가 법률을 개정했다. 2012년 11월 미성년 상속인을 위한 특별한정승인 절차를 신설하는 민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특별한정승인 절차를 추가한 개정 법률은 2012년 12월 13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어떻게 달라졌을까? 먼저, 현행 상속제도에 대해 살펴보자.
미성년 상속인에 상속 선택권 없었던 폐단 발생
사례
A(남성)는 B에게 채무를 남긴 상태에서 1993년 사망하였다. A에게는 아내 C와 아들 D(당시 6세)가 있었는데 이들이 물려받은 재산은 따로 없었다. A가 사망하고 몇 달 뒤 B는 A의 상속인인 C와 D를 상대로 어음금 소송을 제기했다. B는 같은 해 전부 승소판결을 받았는데 당시 C는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C는 물론, 6세에 불과한 D도 패소판결을 받았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인 2017년, B는 승소판결을 근거로 성인이 된 D의 예금계좌를 압류했다. D는 한 달 뒤 부랴부랴 법원에 청구했다. 그리고 “B의 강제집행이 부당하다”는 취지로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한정승인 신청기간이 지났다”며 B의 손을 들어줬다.
상속이란 피상속인(사망으로 상속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사망함에 따라 모든 재산상의 지위를 상속인이 물려받는 것을 말한다. 상속을 받게 되면 부동산, 예금과 같은 재산만 물려받는 게 아니다. 고인의 카드대금, 사채, 은행대출금, 보증채무 등 모든 빚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상속인에겐 세 개의 선택지가 놓여 있다. ① 상속을 받을 것이냐(단순승인), ② 상속을 받되 상속 범위 내에서만 채무를 책임질 것이냐(한정승인), 아니면 ③ 상속을 거부할 것이냐(상속포기). 민법(제1019조 제1항)에 따르면 상속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통상 고인의 사망일)로부터 3개월 내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할 수 있다. 상속인은 고인의 재산상태를 파악해본 후 3개월 내에 3가지 중 1가지를 택해야 한다. 그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법률상 피상속인의 채권ㆍ채무를 제한 없이 그대로 물려받는, 단순승인으로 간주한다. 이 중에서 ‘② 한정승인’은 청구 기간이 너무 짧아서 훗날 상속채무를 둘러싸고 상속채권자와 상속인 사이에 법적 분쟁이 자주 생겼다. 그래서 민법은 한정승인 신청의 기준이 되는 시점을 추가, 특별한정승인절차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한정승인은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고인의 사망일)로부터 3개월 내에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이하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청구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미성년 상속인에겐 불합리한 점이 발생했다. 위 사례의 D의 경우가 그렇다. 이 사건에서는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이 언제인가’가 쟁점이 되었다. B가 C와 D를 상대로 소송 제기한 1993년인지, B가 성인이 된 D의 재산을 압류한 2017년인지가 대립했다. D는 “나이가 어려서 그동안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2017년 강제집행을 당하면서 알게 되었다”며 “그로부터 3개월 내 특별한정승인을 했으니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B는 “D의 어머니(법정대리인)가 소송을 당한 시점인 2013년이 기산점이 된다”며 “2017년의 한정승인은 무효”라고 맞섰다. 1심과 2심은 미성년 상속인이었던 D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B의 주장이 현행법의 해석에 적합하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판단할 때는 법정대리인의 인식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판결은 “법정대리인의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 특별한정승인이 불가능한 경우 법적 효과가 미성년 상속인에게 미친다”며 “미성년 상속인(D)이 성년이 된 후 본인 스스로의 인식을 기준으로 새롭게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다만, 대법원은 “법정대리인이 착오나 무지 등으로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하지 않는 경우에 미성년 상속인을 특별히 보호하기 위하여 별도의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입법론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개정법, 미성년자가 성인된 후 스스로 한정승인 가능
2020년 이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뒤,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미성년 상속인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2022년 민법 개정안, 이른바 ‘빚 대물림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법은 기존의 한정승인절차 외에도 “미성년자인 상속인이 성년이 된 후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지금까지는 미성년자인 경우 상속재산보다 상속채무가 더 많음에도 법정대리인이 제때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하지 않으면 미성년자가 상속을 단순승인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에 따라 미성년자가 부모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고 성년이 되어서도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없는 사례가 잇달아 발생했다. 개정법은 부모의 빚을 상속받은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이후 ‘스스로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골자이다. 개정 법률은 법 시행(2022년 12월) 이후 상속이 개시된 경우부터 적용된다. 다만 법 시행 전에 상속이 개시됐더라도 법 시행 당시 미성년자이거나 법 시행 당시 성년이 됐더라도 아직 상속재산보다 상속채무가 많다는 사실을 몰랐던 경우에는 모두 개정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미성년자의 ‘부모 빚 대물림’이 사라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상속인의 선택지 3가지, 그리고 절차는?
마지막으로 개정된 법률을 반영한, 현행 상속의 절차와 방법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상속인의 선택은 크게 상속을 받느냐 마느냐로 나눌 수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다음 세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한정승인은 꼭 알아두자.
1. 단순승인 : “고인의 재산과 빚 모두 상속받겠다
상속인들이 고인의 재산(채권, 채무)을 전부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쓰는 “상속받았다”는 말은 단순승인을 뜻한다. 이때는 상속재산에서 채무를 뺀 나머지 금액을 상속받게 된다. 단순승인을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절차가 필요 없다. 상속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파는 등 재산을 처분하는 것도 단순승인으로 본다. 이때 고인이 재산보다 빚을 많이 남겼다면 상속인들이 전부 책임져야 한다.
2. 한정승인 : “상속을 받되, 채무는 재산 범위 안에서만”
상속인들에게 가장 유리한 상속 방식이다. 재산을 상속받되, 상속재산의 한도 내에서 채무를 책임지겠다는 의사표시다. 상속받게 될 재산과 채무 중 어느 것이 많은지 분명하지 않을 때는 한정승인절차를 거치는 것이 현명하다. 한정승인은 상속채권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만큼 기간과 방식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한정승인을 할 수 있는 기간은 다음 3가지이다. ① 원칙: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통상 고인의 사망일)로부터 3개월 내 ② 특별한정승인 :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 ③ 미성년 상속인의 특별한정승인 :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하지 않은 경우) 미성년 상속인이 성년이 된 후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
3. 상속포기 : “재산도 빚도 상속을 거부한다”
상속재산 받기를 전면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빚이 재산보다 많을 때는 상속포기 신청을 해야 한다. 상속포기 신청은 상속 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가정법원에 청구해야 한다. 피상속인의 빚이 많은데도 실수로 이 기간을 지나쳐버렸다면 되돌릴 방법이 없다. 상속인 여러 명 중에서 일부만 상속을 포기하면 나머지 상속인들이 자신의 지분에 따라 상속을 받게 되니 상속포기 의사가 있다면 공동으로 청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1순위가 상속을 포기하면 차례로 다음 순위에게 상속이 된다는 점도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