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진찰과 비대면 진료, 의료법 위반인가? (최근 판례로 본 의사의 의료행위를 둘러싼 문제들)

갈수록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있다. 과거엔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각종 질병이 치료 가능한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비례해 사람의 생명, 신체, 건강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은 의사들에게 전문가로서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수준도, 책임감도 높아진다. 코로나 시대를 맞닥뜨리며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개시되면서 비대면 진료 허용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판례 중심으로 의료행위를 둘러싼 몇 가지 문제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1. (의료과실) 의사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정도는
환자와 의사는 어떤 관계일까? 일종의 계약관계다. 환자가 의사에게 진료를 의뢰하고 의사가 치료를 하면 ‘의료계약’이 성립한다. 의료인은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할 의무가, 환자 쪽은 진료에 협조하고 보수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관리하는 의사에게는 높은 책임감과 함께 의무가 따른다. 이를 테면 진료의무(최선을 다해 치료할 의무), 설명의무(증상, 치료 방법의 필요성, 예상되는 위험 등을 설명할 의무), 주의의무(환자의 증상, 상황에 따라 위험방지를 위해 최선의 조치를 할 의무)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의사가 진찰, 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할 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정도, 다시 말해 의료과실이 인정될 수 있는 정도는 어디까지일까? 최근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자(참고로 이 사건은 발열, 오한, 근육통 등을 이유로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가 수술과정에서 사망한 사건으로, 의료진의 과실 유무가 쟁점이 되었다).“의사가 진찰ㆍ치료 등의 의료행위를 할 때에는 사람의 생명ㆍ신체ㆍ건강을 관리하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요구되는 최선의 조치를 다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의사의 이와 같은 주의의무는 의료행위를 할 당시 의료기관 등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이때 의료행위의 수준은 통상의 의사에게 의료행위 당시 알려져 있고 또 시인되고 있는 이른바 의학상식을 뜻하므로 진료환경과 조건,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인 수준으로 파악하여야 한다. 따라서 의사가 행한 의료행위가 그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환자를 진찰ㆍ치료하는 등의 의료행위에 있어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22다264434, 2022.12.29., 판결) 요약하자면 ▲의료행위 당시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그 수준에 비추어 의사가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면 주의의무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의료사고로 인정되는 의료과실은 ① 결과예견의무 위반(환자의 생명, 신체에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부주의하여 그러지 못한 경우)과 ② 결과회피의무 위반(여러 수단을 토안 의료행위 중 적절한 방법을 택하여 환자에게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의사에게는 치료 전(全) 과정에서 재량이 인정된다. 여러 치료 방법 중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가는 “의사 스스로 환자의 상황 기타 전문적 지식ㆍ경험에 따라 결정하여야 할 것”이고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이냐는 해당 의사의 재량의 범위 내에 속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즉 의사가 의료상의 윤리를 지키고 최선을 노력을 다했다면, 비록 환자가 완치되지 못하거나 치료결과가 최상이 아니었더라도 곧바로 의료과실이 성립된다고 볼 수는 없다.
2. 미성년 환자에게도 의사는 설명의무를 부담하나
의사의 의무 중에는 설명의무가 있다. 판례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의사는 응급환자의 경우나 그 밖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환자에게 수술 등 인체에 위험을 가하는 의료행위를 할 경우 그에 대한 승낙을 얻기 위한 전제로서 환자에게 질병의 증상, 치료방법의 내용 및 필요성, 발생이 예상되는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과 부작용 등에 관하여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환자가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환자로 하여금 수술 등의 의료행위에 응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가지도록 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20다218925, 2023.3.9., 판결) 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는 어떨까? 이때 ① 반드시 환자 본인에게 직접 설명해야 할까, 아니면 ② 보호자(친권자 등)에게 설명하는 걸로 족할까? 일반적으로는 ‘②’의 방법으로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의사가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그 설명이 보호자를 통해 미성년자인 환자에게 전달됨으로써 설명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의사가 미성년자인 환자에게 직접 설명해야 한다. 특별한 사정이란 ① 보호자에게 설명하더라도 미성년자에게 전달되지 않아 의료행위의 결정과 시행에 미성년자의 의사가 배제될 것이 명백한 경우나 ② 미성년자인 환자가 의료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보이는 경우 등이다. 이때는 미성년자인 환자의 나이, 질병의 이해 정도에 맞추어 설명할 의무를 의사가 부담한다.
3. 비대면 진료ㆍ전화 진찰은 의료법 위반인가
의사는 반드시 병원 진료실에서 직접 환자를 만나서 대면 진료를 하고, 처방을 내려야 할까? 전화 통화 내용만을 기초로 처방전을 발행해 준 의사가 의료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최근 사례를 보면 맞는 말 같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시대를 맞아 ‘비대면 진료’가 활발하게 시행되면서 일반인들은 혼란스럽다. 전화 진찰은 불법일까?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는 원칙적으로 의료기관 내에서만 의료업을 할 의무가 있다. 또한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하여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서 ‘직접’이란 대면만을 의미할까? 그렇지 않다. 판례는 “‘직접’이란 ‘스스로’를 의미하므로 전화 통화 등을 이용하여 비대면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도 의사가 스스로 진찰하였다면 직접 진찰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최소한 그 전에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진찰하여 환자의 특성이나 상태 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정”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법원은 “현대 의학 측면에서 보아 신뢰할 만한 진단이나 처방 등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대면진찰 등의) 행위가 있어야” ‘진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초진으로 전화 진찰을 했다면 의료법 위반이다. 정리하자면 의사의 진료는 의료기관 내에서 대면 진찰을 원칙으로 하되, 판례에 따르면 사전에 진료실에서 대면 진찰이 이루어진 환자에 한하여 (화상) 전화 진찰은 허용될 여지가 있다(다만, 이 경우도 의료기관 내에서의 진료가 아니므로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코로나 19 팬데믹이 진료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자 보건당국이 법령 등을 개정, ‘한시적’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 것이다. 요지는 ▲감염병과 관련 ‘심각’ 단계 이상의 위기 경보 발령 시 ▲감염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의사의 의료적 판단에 따라 ▲유ㆍ무선 전화, 화상통신 등을 활용한 상담 및 처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2020년 2월부터 약 3년간 2만 5천여 개 의료기관에서 총 1,379만 명이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 비상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이미 많은 국민들이 비대면 진료를 경험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비대면 진료(또는 원격진료)를 제도화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부와 의사단체 등은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하되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비대면 진료를 보조적으로 활용하고 ▲재진 환자와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실시하는 방안 등 구체적인 범위를 논의하고 있다. 조만간, 감염병 위험이 없는 평상시에도 비대면 진료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환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부작용을 대비하고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다.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나 생명권 보호보다 소중한 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