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년’ 구형했는데 판결은 ‘무죄’가 된 까닭은? (형량 결정, 검사의 ‘구형’이 아닌 판사의 ‘선고형’이 기준)

“검찰은 흉악범 ◯◯◯씨에게 강도상해의 혐의로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언론에 흔히 나오는 기사 내용이다. 이 기사를 보고 징역 5년형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구형(求刑)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형을 요구한다’라는 뜻이다. 형사재판에서는 검사가 판사에게 형을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구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형사재판절차를 알아야 한다. 검사는 수사를 통해 범죄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피의자를 기소(공소제기)한다. 기소란 법원에 재판을 구하는 것으로 검사의 고유 권한이다. 법원은 공소사실(검찰이 죄가 된다고 인정한 사실)을 토대로 실제로 피고인이 죄가 있는지를 재판한다. 기소된 이후에는 검사와 피고인이 양쪽 당사자가 되고, 모든 판단은 법원이 내리게 된다. 짧게는 1 ~ 2개월, 길게는 1 ~ 2년의 재판이 끝나면 법원은 드디어 판결을 내린다. 판결 직전(보통 1 ~ 2주 전) 재판장은 법정에서 검사와 피고인에게 마지막 진술을 할 기회를 준다. 이때 검사가 판사에게 “피고인을 징역 5년에 처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식으로 의견을 밝히는데 이것이 바로 구형이다. 구형은 피고인이 받아야 할 적당한 형이 어떤 건지 검사가 의견을 밝힌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판사는 구형을 참고할 뿐 그에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다만 검사의 구형이 ‘앵커링 효과’ 때문에 판사의 양형에 사실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에 반해 판사가 판결을 선고하면서 실제 내리는 형을 ‘선고형’이라고 한다. 검사의 구형이 의견에 불과한 반면, 판사의 선고형은 실제 형량을 뜻한다.
형량결정 순서는 법정형 → 처단형 → 선고형
판사가 형벌을 정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① 먼저 법정형을 파악한다. 법정형이란 ‘3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처럼 각각의 죄에 대해 법전에 나와 있는 형벌을 말한다. ② 다음에는 법정형을 기준으로, 가중과 감경 사유를 반영하여 형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한다. 이것을 처단형이라고 한다. ③ 마지막으로, 처단형의 범위 안에서 판사가 피고인의 태도와 피해자의 피해 정도 등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형을 정하는데 이것이 선고형이다. 선고형은 법정형을 기준으로 가중, 감경 요소를 고려하기 때문에 간혹 법정형보다 낮거나 높을 수 있다. 판사가 선고형을 정하고, 집행유예 여부를 결정할 때 중요한 참고기준이 되는 것으로 대법원 ‘양형기준’이 있다. 양형기준은 범죄의 종류별로 특성을 반영, 유사한 범죄(자)에 대해 양형편차를 줄이기 위해 대법원이 마련한 기준이다. 특히 범죄 발생 빈도가 높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의 형을 정할 때 잣대가 되며, 양형기준 대상범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판결이 양형기준을 벗어나는 경우는 판결문에 그 이유를 기재해야 한다. 양형기준이 적용되는 사건의 양형기준 준수율은 90%(2014 ~ 2020년 1심 판결 기준)가 넘었다. 쉽게 말해 형사재판 10건 중 9건은 양형기준 범위 내에서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는 뜻이다. 강도죄를 예로 들어서 양형기준을 적용해보자. 일반강도는 법정형이 징역 3년 이상이므로, 징역 3 ~ 30년 선고가 가능하다. 양형기준에 따르면 일반강도는 징역 2 ~ 4년을 기본으로 하되, 가중요소(은행 강도, 계획적 범행, 비난 동기 등)가 있을 경우 3 ~ 6년, 감경요소(경미한 액수, 생계형 범죄 등)가 있을 경우 1년 6개월 ~ 3년이 된다. 다만, 강도로 인해 상해의 결과(기본 3 ~ 7년)나 사망의 결과(기본 9 ~ 13년, 가중 시 무기징역까지 가능)가 발생한 경우는 형량이 더 높아진다.
검사의 구형과 판사의 선고형은 형량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검사의 구형은 판사의 선고형보다 형량이 세다. 예를 들어 검사가 징역 5년을 구형했다면, 판사는 그보다 낮은 징역 2년을 선고한다거나 징역형에 집행유예를 붙이는 식이다. 검사는 피고인의 죄를 밝혀야 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심판자인 판사보다는 형이 셀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구형 > 선고형’의 공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남부지법은 도박 현장이나 약점이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상습적으로 돈을 뜯어내거나 행패를 부린 피고인에게 징역 10년 9개월의 중형을 선고한 적이 있다. 검찰의 구형이 징역 5년이었으니 그 2배가 넘는 셈이다. 법원은 검찰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피고인의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의 구형과 달리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도 있다. 검찰은 2009년 초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기소했다. 검찰은 미네르바가 “정부의 환율정책 수행을 방해하고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저하시키는 등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인터넷으로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했다”고 보고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은 “미네르바가 고의로 허위사실을 게시했다고 보기 힘들며 그의 글이 공익성을 위반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환경운동가 A씨는 주택가 인근에 발암성 물질인 시멘트 혼화제 개발연구소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자 반대활동을 벌였다가 기소됐다. 검찰은 명예훼손죄와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여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2019년 법원은 “허위사실로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공익성이 인정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징역형 구형에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두 사건은 검찰과 법원의 유ㆍ무죄 판단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한편 실형이란 말도 있다. 이는 실제로 집행되는 형벌을 말한다. 판결을 선고할 때 판사가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는 말만 했다면 이건 실형 선고다. 그 뒤에 집행유예가 붙어 있다면 실제 감옥살이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형이 아니다. 다음 문장을 이해했다면 당신은 이제 법률의 기초지식은 쌓은 셈이다. “검사는 상해죄로 기소된 D씨에 대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2주 후 법원은 D씨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다.”
‘7년 이하 징역’과 ‘1년 이상 징역’, 더 센 법정형은?
법전을 보면 모든 범죄에는 법정형이 적혀 있다. ‘~한 때에는 ◯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와 같은 형식이다. 다음 2가지를 비교해보자. ①과 ② 중에서 법정형이 무거운 쪽은 어디일까? ①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얼핏 보면 ①인 것 같지만, 정답은 ②다. 징역의 기간은 하한이 1개월, 상한이 30년(가중 시 50년)이다. 법정형에 상한이나 하한 어느 한쪽이 기재되지 않으면 이 기준이 적용된다. 따라서 ‘7년 이하의 징역’은 기간이 ‘1개월 ~ 7년’이고, ‘1년 이상의 징역’은 ‘1년 ~ 30년’을 뜻한다. 그렇다면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절도죄의 법정형)’의 경우는 어떤 형이 내려질까? 벌금형의 하한은 5만원이므로 법정형은 ‘징역 1개월 ~ 6년 또는 벌금 5만원 ~ 1000만원’이 된다. 이때 판결은 징역형이 될 수도, 벌금형이 될 수도 있다. 어떤 형을 정할지는 판사의 권한이다. 판사가 범죄자의 전과나 범행 전후 여러 사정 등을 참작하여 징역형과 벌금형 중에서 형을 선택하게 된다. 징역형과 벌금형이 모두 가능한 절도죄로 예를 들어보자. 초범인 좀도둑은 대개 벌금형 처벌을 받지만, 고가의 물건을 훔친 절도 전과자는 징역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