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고소하기 전 이것만은 알아두자 (고소인이 알아야 할 형사사건의 진행단계와 절차)

목 차
1년에 394,477건. 2023년 고소 사건의 숫자다. 한 해 적게는 30만 건에서 많게는 60만 건까지, 수사기관에 접수되는 고소 사건은 상당하다. 일상생활에서 분쟁이 생기면 우리는 쉽게 고소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 중에서 실제 형사처벌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20%에 불과하다. 한때의 기분에 따라, 아니면 홧김에 고소장을 내는 것은 삼가야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억울하게 피해를 입어 수사기관의 도움을 얻어야 할 때가 있다. 이왕 고소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면 고소 전에 몇 가지 사실을 알아두자.
형사사건의 진행 단계, 경찰 → 검찰 → 법원
첫째, 형사사건의 절차를 이해해야 한다. 형사사건은 보통 경찰 → 검찰 → 법원의 단계를 거친다. ‘경찰-검찰’은 수사 단계고, ‘법원’은 재판 단계다. 여기서 고소장은 수사의 단서를 제시하고 범죄의 처벌을 촉구하는 의미를 갖는다. 고소가 없다면 수사기관은 특정 사건이 일어난 사실조차 알지 못했으리라. 고소 이외에도 고발, 자수는 물론 수사기관이 범죄사실을 인지한 경우도 수사가 시작된다. 수사는 대개 수개월에 끝나지만 복잡한 사건은 길게는 1 ~ 2년이 걸리기도 한다. 수사기관은 고소 내용을 토대로 CCTV를 살펴보거나 목격자나 참고인의 진술을 듣고, 금융기관이나 관공서 등에 각종 조회를 해보는 한편, 피해자를 불러서 자세한 내용을 듣는 과정을 거친다. 그 후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하여 조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작성하는 서류를 ‘피의자 신문조서’라고 한다. 수사기관은 필요한 경우 피해자와 피의자를 함께 불러 대질신문을 진행하기도 한다. 2020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이 생겼다. 경찰 수사 결과 범죄혐의가 인정되는 사건은 검찰에 ‘송치’하되, 인정되지 않으면 ‘불송치결정’ 등으로 종결할 수 있다(단, 불송치결정에 대해 고소인, 피해자 등이 이의신청을 하면 검찰로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 수사 단계에서 마지막 결정은 검사의 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피의자를 기소할지 말지, 기소한다면 구속할지 불구속상태로 재판받게 할지를 검사가 최종 판단한다. 범죄의 객관적 혐의가 충분하다면 검사는 법원에 기소하는데, 비교적 혐의가 가벼운 사건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 서류재판을 하는 약식기소를 할 수도 있다. 그보다 경미한 사건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기도 한다. 범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는 법원까지 가지 않고 검사가 불기소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한다. 법원은 검사가 기소한 내용(공소사실)과 증거를 토대로 피고인이 죄가 있는지를 가린다. 판사는 판결을 통해 유죄 피고인에겐 죄에 따른 형을 결정한다. 검찰은 다시 판결에 따라 집행절차를 진행한다. 집행이란 징역형을 받은 이는 교도소로 보내고, 벌금형을 받은 이에겐 돈을 받는 절차를 말한다. 그런데 고소인에겐 피의자의 기소 여부와 각종 통지를 해주도록 되어 있지만 사건의 세세한 진행 상황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고소를 했다면 검찰이나 법원의 담당 재판부를 통해 사건이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형사사건의 피해자는 법정에서 진술할 권리가 있다. 사건과 관련된 의견을 서면으로 써낼 수도 있다. 법원이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부르는 일도 많다.
고소인이 모르는 사항은 판사ㆍ검사도 모른다
둘째, 고소 전에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고소는 수사의 단서고, 피해자는 형사사건에서 당사자가 아니다(형사사건은 검사와 피고인이 양쪽 당사자이다). 고소장 한 장 냈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수사기관은 1년에 수백만 건을 처리한다. 당신의 사건은 그중 1건일 뿐이다. 사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이다. 간혹 피해자가 시간과 날짜, 피해 액수 등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유리한 결론을 내기 힘들다. 고소인이 모르는 내용은 판사나 검사도 모른다. 따라서 사실관계를 직접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되도록 사건을 날짜와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두면 고소장을 작성할 때도 편하고, 이후에 조사를 받을 때도 일관된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절대로 피해 사실을 부풀리거나 없는 내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소인의 주장에 신빙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추후 무고죄 등으로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유리한 증거와 증인을 미리 확보하라
이와 함께 유리한 증거나 자료를 모으는 일도 상당히 중요하다. 재판에서 증거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만일 부동산 분양을 받았는데 명백한 사기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우선 계약서, 입금 내역, 그 밖의 문서들을 차곡차곡 정리해놓고 계약 내용과 실제 분양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상해나 성폭행 사건이라면 폭행 사실을 알 수 있는 사진과 동영상, 진단서 등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상대방이 시인한 상황이라면 진술서, 사과의 내용을 담은 전자우편이나 문자메시지 등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증거는 꼭 특별한 형식을 갖출 필요는 없으므로 명함, 메모지, 녹취록, 사진 등 어떤 것이라도 도움이 된다. 형사사건에서 목격자나 사건의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을 설득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진술서를 받거나 나중에 참고인이나 증인으로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리한 증언을 해줄 사람 1명이 때로는 어떤 물적 증거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런 증거자료는 고소를 하기 전에 어느 정도 수집해두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제삼자가 알기 쉽게 증거별로 간단한 설명을 따로 붙여서 정리를 해놓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고소인도 수사기관과 법원에 나가야 한다
셋째, 고소한 사람도 고생을 감수해야 한다. 고소당한 사람은 죄가 인정되면 피의자, 그리고 피고인으로 수사기관과 법원에 불려가게 된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고소한 사람이라고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고소장을 내면 경찰은 보통 고소인을 다시 부른다. 고소 내용을 보충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상대방이 범죄를 부인하면 대질신문도 벌인다. 경찰서에서 이런 조사를 마쳤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복잡한 사건이라면 검찰에서 다시 고소인을 부르는 때도 있다. 고소인은 수사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협조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수사기관은 수사를 중단하고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재판이 열리면 고소인은 다시 유력한 증인이 되어 증언대에 설 수도 있다. 고소인도 경찰, 검찰 조사를 받고 때로는 형사법정에 증인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고소를 하겠다면 이런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만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고소를 하는 대신 당사자끼리 합의하거나 아예 그냥 넘어가는 편이 낫다. 이 글을 읽고 고소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고소는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니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부른다고 해서 결코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다만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 사건을 가장 잘 아는 피해자의 수고도 어느 정도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라.
검사의 불기소처분, 종류는
검사가 피의자를 조사한 뒤 법원에 공소제기(기소)를 하지 않는 것을 ‘불기소’라고 한다. 불기소처분에는 ① 혐의 없음 ② 죄가 안 됨 ③ 공소권 없음 ④ 각하 ⑤ 기소유예 등이 있다. ① ‘혐의 없음(무혐의)’은 범죄가 인정되지 않거나 재판에 넘길 정도로 객관적 증거(혐의)가 충분하지 않을 때다. ② ‘죄가 안 됨’은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이긴 하지만 정당방위, 정당행위이거나 형사미성년자(14세 미만)의 범죄 등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경우다. ③ ‘공소권 없음’은 소송 조건이 결여되거나 형 면제 사유가 있을 때 하는 처분이다. 피의자가 사망했거나 이미 확정판결을 받았거나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 등이다. ④ ‘각하’는 고소ㆍ고발이 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사안이 경미해서 수사를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을 경우의 처분이다. ⑤ ‘기소유예’ 란 범죄사실이 인정되나 피의자의 나이와 환경, 범행동기 등을 참작하여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 밖에 기소중지, 참고인중지도 있다. 기소중지란 피의자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나 범인이 누구인지 단기간 내에 판명하기 어려운 경우, 참고인중지는 참고인ㆍ고소인 등의 소재불명으로 수사를 종결할 수 없는 경우에 일단 기소를 유보하는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