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잘못 입금된 돈을 써버렸다면? (‘착오송금’과 관련된 민ㆍ형사 법률상식)

[사례1] A씨는 2년 전,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었다. 집과 직장은 출퇴근이 불가능한 거리여서 A씨는 직장 근처에 있는 B씨 소유의 원룸에서 월세를 살게 되었다. A씨와 B씨는 보증금 1천만원에 월 50만원의 2년짜리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임차인 A씨와 임대인 B씨는 계약기간 내내 월세 체납 문제, 원룸의 수리비용, 이사 시기 등을 두고 언쟁을 벌여서 관계가 좋지 않았다. 어쨌거나 계약기간이 만료된 2년 후 두 사람은 계약 종료에 합의하였고, B씨는 A씨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B씨는 실수로 A씨에게 1천만원을 2번 입금하고 말았다. B씨는 A씨에게 중복 입금된 1천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A씨는 “그 동안 받지 못한 원룸 수리비용 등에 충당하겠다”며 반환하지 않고 자신이 써버렸다.
[사례2] C씨는 어느 날 자신의 통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돈 2천만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다음 날 은행직원은 C씨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 송금된 돈이니 송금자의 계좌로 다시 보내 달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C씨는 “일단 내 통장에 입금된 돈은 내 돈이니 돌려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착오송금된 돈을 써버렸다면 무슨 죄?
은행 거래나 온라인 송금이 빈번해지면서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해 생기는 ‘착오송금’이 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착오송금 중에는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한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은 동명이인이나 비슷한 이름으로 잘못 보낸 경우, 최근 이체목록에서 잘못 선택한 경우 순으로 나타났다. 계좌송금 실수 사례 중 가장 많은 유형은 숫자 ‘8’ 대신 ‘0’을 누른 경우이며 또한 송금 실수가 잦은 시기는 월급날인 10ㆍ15ㆍ25일인 것으로 집계됐다. 잘못 입금된 돈은 당연히 돌려주어야 마땅하다. 돌려주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칫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어떤 범죄일까? 다음 3가지 죄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절도, 횡령, 점유이탈물횡령죄이다. 먼저, 절도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행위”이다. 형법에서 절취란 남의 물건을 주인 의사에 반해 가져와야 성립한다. A씨는 통장에 들어온 돈을 이미 써 버렸을 뿐 남의 돈을 빼앗아 온 것이 아니므로 일단 절도는 아니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횡령과 점유이탈물횡령죄다. 법조문에 따르면 횡령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 점유이탈물횡령은 “유실물, 표류물 또는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했을 때” 성립한다. 횡령은 다른 사람의 재물을 보관하는 사람이 의무를 저버리는 행동을 기본으로 한다.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직원이 회사 돈을 몰래 빼돌리는 것이다. 또한 할인해주겠다고 받은 약속어음을 자기 빚을 갚는 데 쓴다거나, 팔아 달라고 부탁받은 보석을 판매한 후 돈을 챙겼을 때 횡령죄에 해당한다. 점유이탈물횡령은 어떤 죄일까? 주인의 손을 떠난(점유를 이탈한) 물건 등을 챙겼을 때 성립하는 죄이다. 예를 들어 잘못 배달된 편지나 택배를 받았다가 돌려주지 않았거나, 가게에서 거스름 돈을 많이 돌려받은 것을 알고도 챙겼을 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지하철 선반에 놓인 노트북이나 가방 따위를 몰래 가져왔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도 엄연한 점유이탈물횡령이다.
법원 “착오송금된 돈도 보관할 의무 있다”
그렇다면 A씨와 C씨는 어디에 해당할까? 법원의 결론은 횡령이었다. 보통 횡령이라고 하면 회사 직원이 회사 돈을 몰래 빼돌리는 공금 횡령만을 떠올린다. 법원은 착오송금된 돈도 보관할 의무가 있는 재산이므로 반환하지 않으면 횡령이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어떤 예금 계좌에 돈이 착오로 잘못 송금되어 입금된 경우에는 그 예금주와 송금인 사이에 신의성실의 원칙(공동생활의 일원으로 상대방에게 신뢰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보관 관계가 성립한다”고 전제하며 “송금 절차의 착오로 입금된 돈을 임의로 인출해 소비한 행위는 횡령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돈을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이 채권ㆍ채무관계나 거래 관계가 있건 없건 결론은 마찬가지다. A씨와 C씨는 뒤늦게 주인에게 돈을 돌려줬지만,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A씨는 “B씨에게 받을 돈이 있어서 불가피했다”고 항변했지만, 이에 대해 법원은 “A씨와 B씨 사이의 분쟁은 별도의 민사소송 등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므로, 반환을 거부하는 행동은 손해배상을 주장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으로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착오로 보낸 돈이건, 아는 사람이 실수로 더 보낸 돈이건 잘 보관하였다가 돌려줄 법적인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착오송금 시 회수하기 위한 방법은?
그렇다면 실수로 착오송금을 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즉시 송금업무를 처리한 금융기관(은행) 콜센터에 연락해 반환요청을 하는 게 상책이다. 그리고 사전에 착오송금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을 통한 송금 시 수취인 계좌에 일정시간 이후 돈이 입금되도록 하는 ‘지연이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예금보험공사의 착오송금 반환지원제도를 활용하는 방법도 최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착오송금한 금액이 5만원 ~ 5천만원에 해당하는 경우 송금일로부터 1년 이내에 예금보험공사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신청하거나 본사 방문신청을 하면 된다. 금융기관을 통해 반환을 요청하여 미반환된 경우만 신청이 가능하다. 신청이 되면 예금보험공사는 ▲금융기관을 통해 자진반환을 유도하여 해결되지 않은 경우 ▲수취인의 인적사항을 확보, 자진반환을 권유하고 ▲응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 지급명령을 통해 회수를 진행하며 ▲회수 완료 시 회수에 소용된 비용을 차감한 잔액을 착오송금인에게 반환한다(참고로, 지급명령 절차란 민사소송보다 간편한 간이제도이다. 법원이 채권자의 신청에 따라 지급명령을 내리고 채무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발생하고, 채무자가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한 경우에만 소송 절차로 넘어가게 된다). 착오송금 반환지원제도는 접수 후 반환일까지 2 ~ 3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이 제도로 돈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2021년 1,299명(16억원), 2022년 3,744명(44억원), 2023년 3,887명(52억원)으로 제도 도입 후 3년간 총 8,930명(112억원)이 지원을 받았다. 만일, 이러한 제도 등을 통해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금주를 상대로 법원에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민사소송은 자신의 주소지 법원에 소장을 내는 방식으로 제기하면 된다.
함부로 통장 빌려주었다간 범죄자로 전락
한편, 취업이나 대출을 해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계좌를 개설해 주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도 늘고 있다. 카드대금 연체와 생활비 부족으로 고통을 겪던 D씨는 담보 없이 신용대출을 해주겠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E업체에 연락했다. 이 업체는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대신, 대출금 관리를 위해 D씨 명의의 은행 통장과 체크카드 1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E업체의 요구대로 계좌를 개설해서 통장과 카드를 퀵서비스로 보낸 D씨는 대출은커녕 경찰서 출석통지만 받았다. 이 업체가 사실은 인터넷 사기 회사였고 D씨의 계좌는 대포통장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취업을 미끼로 월급 통장을 개설해서 카드와 함께 달라거나, 세금이 많이 나오니 일부 매출을 돌려받을 계좌를 빌려달라거나, 대출을 조건으로 통장을 만들어달라는 사기가 기승을 부린다. 이때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통장이나 카드를 만들어 주게 되는데 상당히 위험하다. 한마디로, 계좌를 빌려주면 무조건 범죄자나 공범이 된다. 전자금융거래법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전자금융거래법에서는 계좌, 현금카드 등을 사고파는 행위, 대가를 요구하거나 약속하면서 빌려주는 행위 등을 엄하게 처벌한다. 더 나아가 보이스피싱 등으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하였을 경우 사기죄의 공범이 되어 무거운 처벌을 받고,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사례도 있다. D씨처럼 대가를 받지 못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아무런 이익도 받지 못했더라도, 향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무형의 기대이익을 대가로 통장을 양도했기 때문에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통장대여나 양도는 무조건 거절해야 한다. ‘통장에 돈을 잘못 보냈으니, 다시 이체해 달라’는 신종 사기도 있다. 돈을 이체해 주면서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피싱 자금 운송책이 돼버리는 상황이다. 모르는 사람한테 돈을 받으면, 요구대로 다시 이체하지 말고 일단 해당 송금 은행에 착오송금 사실을 알려야 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돈, 혹은 거래 금액을 초과한 돈처럼 수상한 돈이 통장이 들어왔다면 일단 사용하지 말고 잘 보관해야 한다. 도덕적으로도 그렇지만 법률상으로도 그렇다. 괜한 송사에 휘말리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