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재판에 꼭 출석해야 할까? - 민사와 형사 재판 불출석 시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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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송사에 휘말리기 싫어한다. 경찰서에 가거나 법정에 가는 일을 꺼린다. 그런데 세상살이란 그리 만만치 않다. 1년에 법원에 정식 소송으로 접수된 사건만 해도 수백만 건에 이른다.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법원에 접수된 소송사건은 6,667,442건에 달한다. 이 중 민사사건이 450만여 건(약 69%), 형사사건이 170만여 건(약 26%)이나 된다. 사람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송사는 이제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 재판이 시작되고 법원에서 부르면 법정에는 꼭 나가야 하는 걸까? 이번 호에서는 재판 출석과 관련된 법률상식을 알아보자.
법정 출석, 민사와 형사의 차이점
사람들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다. 특히나 법을 잘 모르는 사람, 잘 알더라도 거액의 소송을 하는 사람은 여력만 된다면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의 도움을 얻는 것이 승소의 지름길이다. 그런데 변호사를 선임하면 재판에 나가지 않아도 될까?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을 나누어 생각해보자. 먼저, 민사사건이다. 민사에서 변호사의 정식 명칭은 소송대리인이다. 소송대리인은 당사자를 대신하여 소취하, 항소제기, 가압류 등 모든 소송행위를 할 수 있다. 따라서 변호사만 재판에 출석해도 무방하다(민사소송에서는 변호사가 소송대리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도 있다. 청구액 기준 3,000만원 이하 소액사건에서는 배우자ㆍ직계혈족 등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고, 1억원 이하를 청구하는 재판에서는 회사 직원 등도 법원의 허가를 얻어 소송대리를 할 수 있다). 민사뿐 아니라 행정사건, 이혼재판 등 가사사건에서도 소송대리인이 있으면 당사자가 직접 법정에 나갈 필요가 없다. 출석 의무가 없다는 말이다. 연예인이나 재벌들의 이혼ㆍ민사재판에서 그들이 직접 법정에 나오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껄끄러운 상대를 만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재판장이 이혼 재판에서 양쪽의 조정 의사나 자녀 양육문제에 대해 확실한 의견을 듣기 위해, 민사재판에서 의견조율을 시도할 때 당사자가 직접 나올 것을 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도 강제성은 없다. 이런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변호사끼리 재판을 한다.
민사ㆍ이혼 사건, 의무 없으나 출석이 유리
하지만 민사사건에서도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나가는 것이 좋다. 법원도 되도록 당사자가 직접 법정에 나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재판을 직접 보면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변호사에게 재판 내용을 전해 듣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변호사에게 일종의 자극을 줄 수도 있다. 변호사도 당사자가 법정에 나와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 좀 더 성의 있게 재판에 임하게 된다. 변호사는 법률 전문가지만 당사자가 아니기에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의 이야기를 전달받은 변호사가 사실관계를 착각할 수도 있다. 또한 사건의 내막은 변호사보다 당사자가 훨씬 더 잘 알기 때문에 판사에게 직접 설명할 기회도 얻게 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재판에 함께 나가는 게 변호사에게만 맡기는 것보다 낫다. 민사재판에서 유의해야 할 몇 가지를 짚어보자. 우선 재판에 나가지 않고선 이기기 힘들다. 불출석하면 상대방의 주장에 반박할 기회를 잃는다. 또한 원고가 두 차례 재판에 나가지 않으면 소송을 취하한 것으로 본다. 소송을 당한 피고에겐 불출석이 더욱 치명적이다. 원고의 주장과 자료를 중심으로 재판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형사는 변호사가 있어도 피고인 반드시 출석해야
형사사건에서는 예외 없이 피고인이 출석해야 한다. 변호사가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형사사건의 변호사를 변호인이라고 부른다. 변호인은 피고인(검찰이 죄가 있다고 보아 재판에 넘긴 사람)의 강력한 조력자다. 법률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법정에서는 피고인의 대변인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한들 변호인이 형을 대신 살 수는 없다. 변호인은 피고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줄 뿐이다. 형사법정에서는 재판결과에 따라 피고인에게 인신구속 등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피고인이 나와야 한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피고인의 출석 없이는 재판을 열 수가 없다. 형사재판은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강제절차이다. 피고인을 법정으로 부르는 일을 ‘소환’이라고 한다.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예외가 있다. △벌금 500만원 이하 사건 △징역 3년 이하 사건에서 불출석이 피고인의 권리를 보호함에 지장이 없는 사건 △약식명령의 정식재판청구사건 등 비교적 경미한 사건은 피고인 없이도 재판이 가능하다. 그런데 교도소에 구속된 피고인이 출석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형사소송법」제277조의 2에 따르면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은 흔치 않다. 만일 형사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라면 순순히(?) 출석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정리하자면 형사사건의 피고인은 변호사가 있어도 반드시 출석해야 하고, 민사사건은 변호사와 함께 출석하는 것이 유리하다. 참고로 법원이 당사자들을 부르는 방식도 다르다. 민사사건은 원고와 피고에게 재판에 출석하라고 ‘통지’하지만, 형사사건에서는 피고인을 ‘소환’함으로써 강제성을 띤다.
약식기소, 출석 없이 서류재판으로 유죄 인정 가능
약식재판이란 검사의 청구에 따라 정식재판절차가 아닌 약식명령에 의하여 형벌을 정하는 절차를 말한다. 벌금형 이하 간단한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 검사는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사건을 법원에 기소하는데, 비교적 가벼운 범죄는 약식으로 기소한다. 이때 법원도 판결 대신 약식명령을 내리게 된다. 통상의 형사재판이 공개된 법정에서 검사와 피고인의 공방을 통해 이루어지는 데 반해, 약식재판절차는 검사가 제출한 범죄사실과 증거서류만을 토대로 재판한다. 쉽게 말해 서류재판이다. 벌금형 등 죄가 가벼운 사건을 놓고 검사와 피고인이 법정공방을 벌이는 것보다는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법정에 나갈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판사의 약식명령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서류를 받은 날부터 1주일 내에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면 약식명령은 효력을 잃게 되며, 비로소 재판이 시작된다. 이때 정식재판 판결의 벌금 액수가 약식명령 때보다 많아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한 해 법원이 처리하는 약식명령 사건은 약 50만 건에 안팎이다. 2023년을 기준으로 보면 42만 7천여 건에 달했다.
법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통지가 왔다면?
사람들은 자기 송사에도 부담을 느끼지만 남의 송사에 끼어드는 건 더 꺼려한다. 그래서 가급적 증인이나 참고인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증인으로 법원으로 출석하라는 출석통지서를 받았을 경우 아예 법정에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일까? 좋은 해결책은 아니다. 증인으로 나가는 것은 공법상 의무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증인으로 채택되면 출석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법원의 출석통지를 받고도 나가지 않았다가는 예기치 않은 불상사를 당할 수도 있다. 「형사소송법」제151조와 「민사소송법」제311조는 “증인이 정당한 사유없이 출석하지 아니한 때는 불출석으로 인한 소송비용을 증인이 부담하도록 명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과태료 처분을 받고도 또 다시 증인이 나오지 않으면 최대 7일까지 경찰서나 교도소에 감치할 수도 있다. 법원이 강제구인장을 발부하여 법정으로 증인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혹시 증인으로 나가지 못할 사정이 있다면 법원에 불출석사유신고서를 미리 제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