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기술의 불법유출, 형사책임은? - 업무상배임죄, 회사기밀은 물론 영업상 자산까지 보호대상

최근 첨단 기술의 불법 유출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예컨대 반도체 관련 핵심기술 등을 해외에 몰래 팔거나 빼돌린 정보 기술을 토대로 국내에 동종업체를 설립하여 해외에 수출을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기술 유출은 반도체, 태양전지 제조기술, 디스플레이기술 등 전기ㆍ전자는 물론, 자동차, 선박, 환경, 정보통신 분야 등 범위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이러한 기술 유출이나 회사 자산 유출 등에 관여할 경우 민사상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형법상 범죄로 취급되어 엄벌에 처해질 수 있다.
‘영업상 주요한 자산’ 유출도 업무상 배임죄
[사례] 초음파 진단기 회사에 다니던 ‘절친’ 3명이 있었다. 그들은 업무는 물론 취미 생활도 함께 하면서 친분을 다졌다. 그들은 재택근무나 외근이 잦은 업무 특성상 회사 자료를 개인 PC에 담거나 휴대용 USB 메모리에 저장해 업무를 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3명은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시기에 퇴사했다. 그리고 다른 초음파 진단기 회사로 함께 전직했다. 하지만 그들의 동반 전직은 우연이 아니었다.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 그들은 초음파 진단기 관련 회로도, 개발 계획서, 파일, 고객 정보 명세서 등의 정보를 회사에 반납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회사는 그들을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형사법정에 섰다. 적용된 죄명은 업무상 배임이었다. 업무상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득을 취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성립한다. 대법원은 배임을 이렇게 설명한다. 배임(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이란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률의 규정, 계약의 내용 혹은 신의칙상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신임 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 (대법원 2004도520, 2004.6.24.) 판결 등 퇴사한 직원들은 갖고 나온 자료가 이미 공개된 자료이고 쓸모도 없기 때문에 영업비밀이 아니며, 설사 영업비밀이더라도 그걸 이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들이 직접적인 이득을 취한 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항변은 통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회사와의 고용 계약에 따른 의무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성실의 원칙이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의 대원칙으로, ‘신의칙’이라고도 한다)에 비추어 회사 퇴사 시 업무상 취득한 회사의 자료를 무단으로 유출하지 아니하고 이를 회사에 반환하거나 폐기하여야 할 업무상의 임무가 있었다. 법원은 회사 직원이 영업비밀을 경쟁업체에 유출하거나 스스로 이익을 위해 이용할 목적으로 무단으로 반출했다면 그 반출만으로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재산 가치가 있는 자료를 빼돌린 것 자체가 재산상 이익을 얻은 것과 다름없다는 판단이다. 법원은 3명 모두에게 형사책임을 물었다. 그들이 ▲입사 시 회사 자료를 유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한 점 ▲퇴사 시 파일을 반환하지 않고 계속 보관해온 점 ▲자료 중 일부는 전직한 회사 컴퓨터에 옮겨놓은 점 등도 유죄의 근거로 삼았다. 회사 직원이 영업비밀을 경쟁업체에 유출하거나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할 목적으로 무단으로 반출하였다면 그 반출 시점에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한다. 실제로 이익을 얻었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업비밀이나 기밀자료 유출만 배임죄가 될까. 아니다. 영업비밀이나 기밀자료뿐 아니라 ‘영업상 주요한 자산’까지 포함된다. 판례에 따르면 “영업비밀이 아니더라도 그 자료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사용자가 상당한 시간, 노력 및 비용을 들여 제작한 영업상 주요한 자산이 경우에도 그 자료의 반출행위는 업무상배임죄”에 해당한다. 대법원 판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회사 직원이 경쟁업체에 유출하거나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할 목적으로 회사 자료를 무단으로 반출한 경우에, 그 자료가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그 자료가 불특정 다수인에게 공개되어 있지 아니하여 보유자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이를 통상 입수할 수 없고, 그 자료의 보유자가 그 자료의 취득이나 개발을 위해 상당한 시간, 노력 및 비용을 들인 것으로서 그 자료의 사용을 통해 경쟁자에 대하여 경쟁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영업상 주요한 자산에 해당한다면, 이는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한 행위로서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한다. 회사 직원이 영업비밀이나 영업상 주요한 자산인 자료를 적법하게 반출하여 그 반출행위가 업무상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도, 퇴사 시에 그 영업비밀 등을 회사에 반환하거나 폐기할 의무가 있음에도 경쟁업체에 유출하거나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할 목적으로 이를 반환하거나 폐기하지 아니하였다면, 이러한 행위는 업무상배임죄에 해당한다. - (대법원 2015도17628, 2016.7.7.) 판결 등 정리하자면 이렇다. 영업비밀뿐 아니라 영업상 주요한 자산인 경우도 자료를 빼돌리면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한다. 업무를 위해 적법하게 반출한 자료라도 퇴사 시에는 반드시 회사에 반환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직원 컴퓨터 뒤진 사장이 무죄된 사연
[사례] A씨는 컴퓨터 프로그램 회사 사장인데 최근 심기가 불편했다. 누군가 회사 핵심 기술을 유출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또한 퇴직한 B씨가 유사한 회사를 설립했는데 A씨의 고객을 빼돌렸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범인은 내부에 있었다. A씨는 B씨와 가깝게 지내는 C씨가 고객을 B씨 회사로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A씨는 C씨를 추궁했지만 그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B씨와 C씨가 짜고 자신의 기술과 고객을 빼돌린다는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이 없었다. A씨는 C씨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컴퓨터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암호로 비밀 장치가 설정돼 있었다. 그는 C씨의 컴퓨터 본체의 하드디스크를 떼어낸 뒤 다른 컴퓨터에 연결했다. 그리고 특정 단어로 파일을 검색했다. 그 결과 B씨 회사 명의로 보낸 견적서, 고객들의 계약서, 계약을 빼돌렸다는 내용이 담긴 메신저 대화 자료, 이메일 자료 등 물증을 확보했다. A씨는 C씨를 업무상 배임죄로 고소했다. 형사처벌 위기에 몰린 C씨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A씨를 맞고소했다. ‘남의 컴퓨터를 함부로 열어보는 것도 범죄’라는 주장이었다. A씨와 C씨 모두 형사법정에 섰다. 재판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회사 자료를 빼돌려 B씨에게 보낸 C씨는 업무상 배임죄로 처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범죄를 적발하기 위해 컴퓨터를 엿본 A씨가 남는다. 먼저 형법을 보자.
형법 316조 【비밀침해】 ① 봉함 기타 비밀 장치한 타인의 편지, 문서 또는 도화를 개봉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봉함 기타 비밀 장치한 사람의 편지, 문서, 도화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 매체 기록을 기술적 수단을 이용해 그 내용을 알아낸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제2항을 보면 A씨는 유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법원은 몇 가지 특별한 사정을 감안했다. A씨가 C씨의 컴퓨터를 뒤지기 전, C씨의 행동은 매우 의심스러운데도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서 사장으로서는 긴급히 확인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하드디스크 정보도 특정 검색어를 입력해 한정된 정보만을 열람했다. 법원은 “A씨는 회사의 손해방지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정보에 대한 접근이 허용될 필요가 있었다”고 예외를 인정했다. C씨가 업무상 배임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점도 참작돼 A씨의 행위는 정당행위(형법 제20조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로 인정되어 무죄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A씨의 경우 회사의 이익을 빼돌린다는 소문이 아주 구체적이었고, 회사의 손해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절실했기 때문에 정당행위가 인정되었다는 점이다. 긴급하고 타당한 이유 없이 다른 직원의 컴퓨터를 뒤졌다가는 범죄행위로 취급되어 낭패를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