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제도, 새출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 파산과 개인회생제도 절차 이해하기

목 차
50대 초반의 A씨는 아시아권의 한 국가에서 30년간 복권 사업을 할 수 있는 사업권을 어렵게 따냈다. 그는 현지에 지사를 설립하고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는 등 몇 년간 공을 들였다. 하지만 현지 사정 때문에 복권 사업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이 때문에 회사는 폐업 처리됐고 개인적으로는 수십억 원의 빚을 지게 됐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A씨,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A씨가 남은 빚을 갚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빚을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까? 이럴 경우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 바로 개인파산이다. 실제로 A씨는 법원을 통해 1년 만에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파산’이라고 하면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파산이 재기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서울, 수원, 부산 등에 파산ㆍ회생사건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회생법원이 생기고 있다. 과거 우리 사회는 파산, 회생제도 등 도산사건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부정적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채무자에 대한 구제와 배려’를 통해 채무자의 신속한 재기와 경제활동 복귀를 돕는 것이 개인뿐 아니라 국가경제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고금리와 고물가로 인하여 많은 개인과 기업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한 해 개인파산 사건은 4만 1,239건, 개인회생 사건은 12만 1,017건이 법원에 접수되었다(2023년 통계 기준).
‘개인파산’, 잘만 하면 재기의 발판된다
개인파산은 개인이 자신의 재산으로 모든 채무를 갚을 수 없는 상태(지급불능)에 빠진 경우에 채무를 정리하고자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다. 은행대출, 사채, 카드빚, 물품대금 등 채무의 종류는 상관이 없다. 신청 자격도 개인이라면 제한이 없다. 봉급생활자, 주부 등 소비활동을 원인으로 한 ‘소비자 파산’과 개인사업자가 사업실패로 부도를 내거나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게 된 ‘영업자 파산’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파산신청이 들어오면 채무자의 재산과 노동력으로 채무를 변제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판단한다. 여기에 채무자의 연령, 직업, 기술, 건강, 재산상태 등을 고려하여 파산선고 여부를 결정한다. 파산이 선고되면 원래 남은 재산을 채권자에게 평등하게 나눠주는 절차(파산절차)를 갖게 되지만 개인파산의 경우 대부분 남은 재산이 없기 때문에 이 절차를 생략한다. 따라서 개인파산은 파산선고와 파산절차 폐지 결정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여기까지 볼 때 재산보다 빚이 많은 개인이 파산선고를 받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파산선고만으로는 재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히려 공무원, 변리사, 회계사 등의 직업을 가질 수 없고 금융기관 거래에 제약이 뒤따르는 등 사회생활의 불이익만 따르게 된다. 파산으로 진정한 구제를 받으려면 법원의 면책결정이 뒤따라야 한다.
면책결정 못 받으면 사회생활 불이익만 남아
면책이란 파산을 통해 변제하지 못하고 남은 채무를 면제시켜주는 제도다. 면책을 받아야 비로소 빚에서 벗어난다. 즉 남아 있는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채무가 있는 금융기관에는 면책결정문을 직접 제출하여 면책 사실을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파산으로 받았던 신분상 불이익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된다. 단 면책결정을 받아도 세금, 벌금 등의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 법원은 파산선고와 동시에 면책절차를 거치는데, 채권자에게도 이 사실을 통지하고 한 달 정도의 이의신청 기간을 둔다. 이 기간에 법원은 채권자의 이의신청서와 기록을 검토하고 사건에 따라서 채무자를 심문하는 등 다소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비양심적이고 불성실한 채무자를 걸러내기 위해서다. 파산선고만 받고 면책이 되지 않는 사례는 개인파산절차에서 최악의 경우다. 파산에 따른 불이익은 그대로 받고 채무는 한 푼도 면제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신의 채무를 모두 갚은 후 법원에 복권신청을 내야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파산을 신청하는 사람은 법에서 정하는 면책불허가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사례로 보면, 파산 직전에 은행대출을 받아 대출금을 배우자와 자녀에게 송금한 행위, 파산 직전까지 가상화폐 투자, 다단계 사업 등으로 거액의 채무를 부담한 행위, 대출금의 구체적인 사용 내역을 밝히지 않은 행위 등은 모두 면책불허가 사유에 해당한다. 설사 부정한 행위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파산 직전 집중적으로 채무를 부담했다면 법원의 의심을 받게 된다. 채무자가 부정한 사실로 면책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 나중에 형사처벌을 받거나 면책결정이 취소될 수도 있다. 왕년의 스포츠 스타 P씨도 비슷한 이유로 면책불허가 결정을 받은 사례가 있다. 법원은 P씨가 파산신청을 하면서 소득의 일부를 누락했고, 차명계좌에서 생활비를 사용한 사실이 있다며 이렇게 결정했다. 법에서는 파산절차에 있다는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파산을 선고받으면 각종 법률에 따라 여러 가지 신분상 제약이 따른다. 파산자는 후견인, 유언집행자, 공무원,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등이 될 수 없다. 상법상으로는 합명회사ㆍ합자회사의 사원이라면 퇴사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주식회사와 위임 관계에 있는 이사 등도 퇴직해야 한다. 파산 사실은 신원증명 업무를 관장하는 시ㆍ군ㆍ구ㆍ읍ㆍ면장에게 통지되고, 금융기관 거래에서도 불이익을 받게 된다. 파산자가 전부 면책결정을 받게 되면 당연히 복권되어 법률상 신분 제한이 해소된다. 하지만 공무원 신분은 회복되지 않으며, 대출 등 금융기관 이용에 제약이 따르는 불이익은 여전히 남는다. 한편 면책불허가 결정이나 일부 면책결정을 받은 사람이 신분상 제한에서 벗어나려면 채무를 변제한 후 별도로 복권절차를 밟아야 한다.
파산이 부담스럽다면 개인회생을 고려하라
인생을 정리할 시점에 거액의 빚을 지고 있다면 파산을 떠올려볼 만하다. 그런데 아직 한창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파산선고를 받는다면? 사업을 하거나 전문직을 갖고자 하는 사람에게 파산은 치명적이다. 금융거래에도 지장이 있다. 파산 외에 빚을 정리할 수 있는 제도는 없을까? 결혼 10년차 공무원 B씨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혼 초부터 빚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갑내기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박봉으로 빠듯하지만 단란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내가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 마이너스 인생이 됐다. 다행히 아내는 2년 만에 완치됐지만 카드 돌려막기, 은행대출, 사채 등으로 병원비를 충당하는 바람에 빚이 1억원을 넘었다. 월세를 살고 있는 B씨는 현재 50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어서 이자를 감당하기도 벅차다. B씨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무작정 로또 당첨만 기다릴 수는 없다. 현실적인 방법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개인회생이다. 개인회생은 직장이 있고 빚을 갚을 의지도 있으나 감당하기엔 벅찬 채무를 진 사람들을 위한 제도다. 3년간 원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는 법원이 면책을 해준다는 이점이 있다. 파산과 달리 공무원 신분이 박탈되거나 변호사, 세무사 등록이 취소되는 불이익도 없다. 개인회생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월급, 사업소득 등 계속적 또는 반복적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어야 하고 담보채무액(부동산에 전세권, 저당권 등이 설정된 금액)이 15억원 이하 또는 무담보채무액이 10억원 이하여야 한다(참고로 개인회생과 유사한 채무조정제도로 [개인워크아웃]이 있다. 개인워크아웃은 ▲3개월 이상 장기연체자를 대상으로 신용회복위원회가 운영하는 제도고 ▲사채, 보증 등 모든 채무를 포함하는 개인회생과 달리 신복위 협약가입 금융기관의 채무에만 신청할 수 있으며 ▲총채무액이 15억원 이하일 때만 가능하다. ▲최대로 탕감받는 채무는 이자 전액과 원금 70% 정도며 ▲변제기간이 무담보채무는 최장 10년, 담보채무는 최장 35년이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졌다면 채무자는 앞으로 받게 될 소득에서 생계비를 뺀 나머지 금액으로 변제하겠다는 계획을 법원에 밝히고, 계획대로 3년간 충실히 변제하면 남은 채무는 사라진다. B씨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접근해보자. B씨는 현재 월세보증금 1000만원 외에 다른 재산이 없이 월급 500만원(세전)을 받고 있다. 아내와 초등학생 아들 2명을 부양하고 있다면 4인 가족 최저생계비(중위소득의 60%, 2025년 기준 약 365만원)는 우선 보장받는다. 부양가족은 미성년자, 60세 이상이거나 자력으로 생계유지가 불가능한 경우에 포함된다. 배우자도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면 부양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여기에 각종 세금, 건강보험료 등 제세공과금, 병원비 등을 제외한다면 B씨가 갚을 수 있는 여력은 60만원 정도다. B씨가 변제계획안을 제출하고 법원이 인가해준다면 그때부터 실행에 옮기면 된다. 채권자들도 개별적으로 빚 독촉을 할 수 없다. B씨가 3년간 매달 꼬박꼬박 60만원씩을 갚는다면 비로소 모든 채무에서 벗어나게 된다(개인회생 변제기간은 2018년부터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됐다. 단, 예외적인 경우만 5년이다). 변제금을 완납했다면 면책신청서를 제출, 면책결정을 받으면 된다.
“도덕 불감증” vs “성실하나 불운한 개인 구제”
한 해에 개인파산, 개인회생으로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법원의 문을 두드린다. 이 제도가 도덕 불감증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미 경제적으로 파탄 난 사람을 무작정 방치하는 것은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결국, 성실하게 살아왔으나 불가피하게 빚을 떠안은 채무자와 달리 자신의 경제력과는 상관없이 흥청망청 살아온 비양심적인 채무자를 법원이 잘 걸러내는 일이 관건이다. 어쨌거나 파산이나 회생은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