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경범죄’ 취급 스토킹범죄, 특별법 제정되기까지
2022년 서울 한 지하철 역사 화장실에서 여성 역무원이 한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가해자는 스토킹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피해자에게 또다시 거리낌 없이 접근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은 분개했다. 최근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25년 6월 대구에서 스토킹 범죄로 경찰의 신변보호조치를 받던 50대 여성이 자택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시간여 만에 사망했다. 이 사건들은 스토킹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피해자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 스토킹행위 관련법이 마련된 건 2021년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법은 스토킹에 관대했다. 일반 범죄가 아닌 경범죄 중에서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되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됐다. 그나마도 몇 만 원의 범칙금만 내면 전과도 남지 않았다. 이런 탓에 피해자가 신고를 해도 가해자는 범죄를 중단하기는커녕 오히려 추가 범행을 저지르는 일도 생겼다. 단순 스토킹으로 시작한 범죄가 폭행, 협박, 성폭력, 심지어는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범죄로까지 이어지면서 스토킹은 사회 문제가 되었다. 국회는 심각성을 깨닫고 2021년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범죄 처벌법)을 만들었다. 이로써 ‘스토킹’이라는 용어가 법전에 처음 등장했다.
스토킹범죄처벌법, 어떤 내용 담겨 있나
스토킹범죄처벌법은 ‘스토킹행위’에 대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법이 예시로 든 스토킹행위는 ‘접근하거나 따라 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등 7개의 유형이 있다. 과거엔 지나친 순정 정도로 여겼을 행동도 지금은 스토킹행위가 될 수 있다. 가령 ▲짝사랑한다는 이유로 따라다니거나 학교ㆍ직장 앞에서 기다리는 일 ▲집으로 선물ㆍ꽃배달을 하는 행위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만일 상대가 거부의사를 밝혔고 불안이나 공포를 느꼈다면 스토킹행위가 될 수 있다. 스토킹행위는 연인 등 남녀 관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동성, 지인, 이웃, 낯선 사람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이유도 따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전화나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스토킹범죄가 증가함에 따라 ▲정보통신망 이용 프로그램 또는 전화 기능에 의하여 말, 글, 영상, 화상이 상대방에게 나타나게 하는 행위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상대방 등의 개인정보 등을 제3자에게 제공 또는 배포, 게시하는 행위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방의 정보를 이용하여 자신이 상대방인 것처럼 가장하는 행위 등이 스토킹 유형에 추가됐다. 눈여겨볼 점이 있다. 이런 행위가 있었다고 하여 곧바로 범죄가 성립하진 않는다. 현행법상 스토킹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이뤄졌을 때 비로소 ‘스토킹범죄’가 된다. 다만 단발성 스토킹행위라도 피해자 등이 신고하면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은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접근금지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수사기관의 조치로는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가 있다. 응급조치란 경찰이 신고 즉시 현장에 나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피해자가 동의한 경우 상담소나 보호시설로 안내하는 일을 말한다. 또 경찰은 스토킹행위가 지속ㆍ반복될 우려가 있고 긴급한 경우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다.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스마트폰 등 통신 금지 등이 그것이다. 경찰은 긴급응급조치 후 법원에 48시간 이내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스토킹범죄가 재발될 우려가 있는 경우엔 검찰이 법원에 잠정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잠정조치로는 가해자에 대해 ▲스토킹범죄 중단 서면경고 ▲100미터 접근금지 ▲통신 금지 ▲최장 1개월 구치소 유치 등을 할 수 있다. 최근 법령 개정으로, 법원은 잠정조치만으로 최장 3개월 전자장치 부착(이른바 전자발찌)을 명할 수 있다. 스토킹범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흉기를 사용한 스토킹범죄라면 최장 징역 5년까지 늘어난다. 유죄 판결 시에는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이수ㆍ수강명령을, 집행유예 시에는 보호관찰ㆍ사회봉사를 가해자에게 함께 부과할 수 있다.
‘부재중 전화’도 불안, 공포 느꼈다면 스토킹범죄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서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사례도 있다. 지속적으로 걸려온 ‘부재중 전화’를 받지 않아서 ‘부재중 전화’ 표시가 되도록 한 행위가 스토킹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법원마다 유ㆍ무죄가 엇갈려 논란이 된 적이 있다. 50대 남성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 B씨와 금전 문제로 관계가 나빠졌다. A씨는 휴대전화로 B씨에게 협박성 문자와 B씨 가족의 집이 나오는 사진 등을 보냈다. B씨가 자신의 번호를 차단한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타인의 전화를 이용, B씨에게 수차례 협박 문자를 보냈고, 자정 무렵 6차례를 비롯하여 약 30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B씨의 휴대전화엔 부재중 전화 표시가 남아 있었다. 스토킹범죄처벌법은 ‘스토킹 행위’에 대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규정한다고 했다. 이 중에서 ‘우편, 전화, 팩스, 정보통신망을 이용, 물건이나 글ㆍ말ㆍ부호ㆍ음향ㆍ그림ㆍ영상ㆍ화상 등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에 부재중 전화 표시가 해당하는 지가 관건이 되었다. 하급심은 A씨의 범죄사실은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부재중 전화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스토킹 행위가 인정되려면 전화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글ㆍ말ㆍ부호ㆍ음향ㆍ그림ㆍ영상ㆍ화상 등이 도달하게 해야 한다”면서 “A씨가 B씨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만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고, 상대방의 전화에 부재중 전화가 표시되었더라도 이는 전화기 자체의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여 ‘글’이나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스토킹범죄에 해당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A씨가 전화를 걸어 B씨의 휴대전화에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되도록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는 실제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A씨가 (전화를 걸어서) B씨와 전화통화를 원한다(또는 원하였다)는 내용의 정보가 벨소리, 발신번호 표시, 부재중 전화 문구 표시로 변형되어 B씨의 휴대전화에 나타났다면 음향, 글을 ‘도달’하게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전화를 거는 경우 불안감 또는 공포심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고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따라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반복적으로 전화를 시도하는 행위로부터 피해자를 신속하고 두텁게 보호할 필요성도 크다”고 대법원은 판시했다.
“피해자 의사에 반한 통화 … 말하지 않은 경우도 스토킹 인정 여지”
대법원은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증폭된 피해자일수록 전화를 수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토킹행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우연한 사정에 의하여 처벌 여부가 좌우되도록 하고 처벌 범위도 지나치게 축소시켜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아울러, 스토킹 관련 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 의사에 반하여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① 통화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나 ②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스토킹 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판시했다. ①의 경우 전화 통화 내용과 관계없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지위, 성향, 행위 전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전화 통화 행위가 피해자의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평가되면” 스토킹행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②의 경우처럼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벨소리가 울리게 하거나 발신자 번호가 표시되도록 한 것까지 포함하여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야기했다면 스토킹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반의사불벌죄 조항 삭제, 전자발찌 부착 등 법률개정
스토킹범죄는 제정 당시에는 반의사불벌죄였다.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밝힌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 조항 때문에 가해자 측이 처벌을 면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하여 합의를 종용하거나 2차 가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았다. 성범죄에서 친고죄 조항을 폐지했듯이 스토킹범죄도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되었고, 2023년 법이 개정되었다. 스토킹범죄는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다. 그전에, 국가가 나서서 초기에 피해자를 보호하고 더 큰 사고 발생을 막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한편, 스토킹범죄처벌법과는 별도로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23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