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며
지난 8월 17일 제4차 국민연금 재정재계산 결과가 발표되면서 국민연금과 관련된 뉴스들이 각종 언론의 주요한 기사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우리 노후를 위한 핵심적인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생활의 안정에 대한 소식보다는 이 제도가 기본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제도인지에 대한 논쟁만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번 재정재계산에서 기금고갈시점이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지면서 국민연금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적지 않다.
1. 국민연금이 세대 간 형평하지 않은 제도인가?
국민연금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 가운데 하나는 국민연금 제도가 처음 설계될 때부터 도입 당시의 근로세대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게 설정되어 결과적으로 그 부담을 후세대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국민연금 제도 도입 초기 가입자들은 납부하는 보험료에 비해서 지나치게 높은 급여를 받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연하면, 국민연금은 현재의 적립기금으로서 모든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엄청난 부채를 미래세대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국민연금의 재정 문제에 대한 중요성을 환기한다는 측면에서는 가치가 없는 주장은 아니지만, 사회보험 제도의 재정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국민연금 제도가 순수한 저축제도라면, 납부한 보험료는 고스란히 적립되어 있어야 하며 보험료를 낸 것만큼만 급여로 받도록 설계되어야만 정당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저축제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일종의 공적 이전 (public transfer)의 성격을 가진 사회보험 제도이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국민연금이 없을 때 우리 사회에서 노후소득 보장은 누구의 책임이었는가?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은퇴한 부모의 노후는 성년 자녀들의 책임이었고 그 전통은 굳이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나 가족구조의 변화 등 사회변동으로 인해 전통적인 부모 부양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어느 순간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그 당시 근로세대에게 ‘지금부터 당신의 노후는 당신이 책임지도록 하는 공적연금 제도를 도입할 테니 당신이 낸 돈만큼만 국민연금을 받아가도록 하라’라고 한다면 어떨 것인가? 그 근로세대는 유사 이래 최초로 부모세대에 대한 부양 책임을 그대로 부담하면서 본인의 노후준비까지 고스란히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학술적으로 이를 이중부담 (double payment) 문제라고 한다. 이렇게 이중부담이 발생하여 특정 세대가 두 사람의 노후를 책임지도록 하는 방식이 과연 공평한 것인가?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의 도입은 부모 부양이라는 기존 전통사회의 노후소득 보장의 틀을 산업사회에서의 노후소득 보장의 틀로 전환하는 것으로서, 도입 당시의 세대에게 본인의 노후준비를 본인이 전부 책임지도록 하는 경우 그 부담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당신은 이전처럼 부모를 부양하되, 당신이 당신 노후를 위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냈을 때 당신이 낸 것보다 훨씬 후한 급여를 제공해주겠다’는 공적 이전(세대 간 이전)에 대한 암묵적 계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세대의 연금 급여는 본인의 보험료뿐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보험료 수입으로도 일부를 충당하는 것이다.
2.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에 비해 차별적인가?
국민연금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불만 가운데 하나는 국민연금이 공무원연금에 비해서 보장 수준이 열등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무원들은 공무원연금 하나 만으로도 안정된 노후생활이 가능한 반면, 일반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소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은 평균 급여액이 월 230만원인데 비해, 국민연금은 월 40만원 수준이라는 것이 이러한 의견의 논거가 된다. 이 수치만 보면 공무원연금 급여는 국민연금에 비해서 5배 이상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세심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공무원연금은 공무원으로서 가입기간 20년을 채워야만 연금을 제공해왔기 때문에 평균 연금액이 높은 것이고 국민연금은 제도 도입 초기 중년 근로자들을 위해 5년만 가입해도 연금을 제공했기 때문에 평균 연금액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국민연금 역시 20년 이상 가입하여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평균 연금액이 월 90만원에 이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비교의 단위를 일치시키는 경우 공무원연금 급여와 국민연금 급여는 2배를 상회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3. 국민연금 지급에 대한 보장은 필수적인가?
이번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서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는 국민연금법에 지급보장을 명문화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사실 국민연금의 지급보장 명문화 주장은 이번에 처음 제기된 이슈는 아니지만, 주요한 이슈로 등장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논쟁 자체가 ‘지급보장 문구를 법에 넣지 않으면 정부가 안 줄 수도 있는 건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문제제기로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명문화하지 않는다 해도 현재의 법만으로도 정부는 반드시 약속한 급여를 지불하여야 한다. 어떠한 정부도 수십 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국민들의 공적연금 수급권을 함부로 철회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공개된 자리에서 ‘굳이 지급보장 명문화를 요구하는 것도 이상하고, 굳이 명문화에 반대하는 정부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현실은 앞에서 이야기한 상식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신뢰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기금고갈 시점의 단축은 국민연금의 지급불능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야기해야 할 점은, 공적연금은 기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지급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 선진국의 공적연금은 기금을 전혀 적립하지 않는 이른바 부과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 국가에는 기금 자체가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이 연금수급권 철회에 대해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대단히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기금이 40년 치가 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금이 고갈되는 시점부터 국민연금이 지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일반화되어 있다. 핵심은 국민연금이 적립방식이건 부과방식이건 간에 공적인 제도인 이상, 국민들은 본인의 연금급여를 받을 권리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4. 국민연금 기금운용은 주먹구구이며 수익률은 형편없는가?
이번 제4차 국민연금 재정재계산 결과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이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금 고갈 시점의 변화가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600조 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을 엉망진창으로 운영하여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금 고갈 시점의 변화는 미래의 경제성장률이나 출산율 등의 거시경제 변수의 예측이 변화해서 생긴 것일 뿐, 기금 운용 성과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국민연금 기금운용이 건실하다는 근거는 매우 많다. 우선, 국민연금의 수익률과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비교해보자.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보면, 2012년에서 2016년 사이 5년 동안의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2.83%인 반면, 국민연금은 5.18%에 이르고 있다. 해외 연기금과 비교해보아도 장기적으로 볼 때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매우 안정적이다. 그런데도 국민연금 수익률이 낮다는 뉴스는 매우 익숙하다. 이는 국민연금 관련 이슈를 만들고 싶어 하는, 다시 말해서 국민연금 관련해서 부정적인 기사들을 양산하고 있는 일부 언론과 이익집단들의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민연금은 최근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을 크게 늘렸으나, 일부 해외 연기금에 비해서는 그 비중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 혹은 금융시장이 호황인 경우 위험자산의 수익률은 높아지기 마련이며 따라서, 최근 해외 연기금에 비해서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률이 다소 낮은 것은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당연한 사실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민연금 기금이 엉망으로 운용되어 수익률이 낮은 것 같은 호도가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금융시장이 불황이거나 경제 위기 시 국민연금은 해외 연기금보다 안정된 투자로 인해서 손실을 최소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된 뉴스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과 관련된 언론 기사들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국민연금 관련 뉴스들은 사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일반 저축이나 금융상품의 논리로 국민연금을 이해하려고 하면 많은 부분이 모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저축이나 금융상품의 논리를 일부 가질 수는 있으나, 그 논리만으로는 국민연금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사회보험의 원리로서 국민연금을 이해하여야 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아직 국민들의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2003년 국민연금 폐지론이 일어났을 때에 비해 국민들의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는 상당히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일부 사람들이 국민연금을 없애자는 주장을 하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국민연금의 존재로 나의 부모님과 나의 노후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앞으로 국민연금이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은 대단히 많다. 다층노후소득 보장 체계에서 국민연금이 궁극적으로 어떤 제도로서 기능해야 하는지 등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최신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