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개념과 판단기준의 재정립 - 대법원 2024. 12. 19.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
BY 이남준 202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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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통상임금의 판단 기준)
2013년 대법원 전합 판결에서는 어떠한 임금이 통상임금에 속하는지는 ①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② 정기적, ③ 일률적, ④ 고정적으로 지급된 것인지를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여, 4가지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 ① 소정근로의 대가는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에 통상적으로 제공하기로 정한 근로에 관하여 사용자와 근로자가 지급하기로 약정한 금품을 의미한다.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을 초과하여 근로를 제공하거나 근로계약에서 제공하기로 정한 근로 외의 근로를 특별히 제공함으로써 사용자로부터 추가로 지급받는 임금이나 소정근로시간의 근로와는 관련 없이 지급받는 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라 할 수 없으므로 통상임금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② 정기성은 어떤 임금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적으로 지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통상임금에 속하기 위한 성질을 갖춘 임금이 1개월을 넘는 기간마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경우, 이는 노사 간의 합의 등에 따라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에 통상적으로 제공하는 근로의 대가가 1개월을 넘는 기간마다 분할지급되고 있는 것일 뿐, 그러한 사정 때문에 갑자기 그 임금이 소정근로의 대가로서의 성질을 상실하거나 정기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정기상여금과 같이 지급주기가 1개월이 넘는다고 하더라도 통상임금에서 제외될 수는 없는 것이다. ③ 일률성은 어떤 임금이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성질을 갖출 것을 말하는데,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것에는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뿐만 아니라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에 달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통상임금의 판단기준 중 ① 소정근로의 대가, ② 정기성, ③ 일률성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정의에서 도출할 수 있는 내용이나, ④ 고정성의 경우 2013년 판결에서 제시된 판단기준이다. ④ 고정성은 ‘근로자가 제공한 근로에 대하여 그 업적, 성과 기타의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확정되어 있는 성질’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정성을 갖춘 임금은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를 제공하면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예정된 임금이므로, 그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제공하더라도 추가적인 조건을 충족하여야 지급되는 임금이나 그 조건 충족 여부에 따라 지급액이 변동되는 임금 부분은 고정성을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예컨대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는 임금(재직조건부 임금)과 일정 근무일수를 충족하여야 지급하는 임금(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의 경우 조건 성취 여부가 불확실하므로 고정성이 부정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013년 대법원 전합 판결이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였으나, 통상임금의 판단기준 중 ‘고정성’과 관련하여 학계와 실무에서 끊임없는 비판이 있었다. 결국 2024년 대법원 전합 판결에서는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에서 ‘고정성’을 제외하였다. 아래에서 2024년 대법원 전합에서는 어떠한 이유로 ‘고정성’을 통상임금 판단기준에서 제외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202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통상임금의 판단기준에서 ‘고정성’이 제외되어야 하는 이유
① 고정성 개념은 법령상 근거가 없음
2013년 전합 판결에서 제시한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될 것을 의미하는 고정성 개념은 법령의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가령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가치를 임금으로 전환한 개념으로, 법령상 정의된 통상임금의 본질적인 판단기준은 ‘소정근로 대가성’이다. 나아가 ‘정기성’과 ‘일률성’은 이러한 ‘소정근로 대가성’있는 임금의 전형적 속성으로서 임금의 지급시기와 지급 대상이 미리 일정하게 정해지도록 요구함으로써 통상임금의 범위를 사전에 합리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법령상 근거 없이 ‘지급 여부나 지급액의 예외 없는 사전 확정’, 즉 ‘고정성’이라는 징표를 더하는 것은 소정근로를 중심으로 도출되어야 하는 정당한 통상임금의 범위를 축소시키게 되어 부당하고 설명하고 있다.② 통상임금의 강행성에 반함
고정성의 개념은 통상임금의 강행적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통상임금은 법정수당 산정 도구로서 연장근로 등에 대하여 법이 정한 합당한 보상을 하도록 한 강행법규와 관련되어 있기에 당사자가 그 의미나 범위를 임의로 변경할 수 없는 강행적 개념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대법원 전합 판결은 근로관계의 당사자가 어떤 임금 항목에 조건을 부가하여 그 지급여부와 지급액이 사전에 확정될 수 없는 경우 고정성이 결여되어 통상임금의 범위를 쉽게 좌우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결과를 발생하게 하였고, 이는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에서 임금에 조건을 부가함으로써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할 위험을 초래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③ 소정근로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함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개념으로, 실근로와 무관하게 소정근로 그 자체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2013년 대법원 전합 판결은 고정성을 갖춘 임금을 ‘근로자가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를 제공하면 업적, 성과 기타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와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예정된 임금’이라고 정의하여 조건 충족 여부에 임금 지급 여부가 연계되면 고정성이 결여된다고 본 것은 ‘소정근로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④ 통상임금의 사전적 산정 가능성을 약화시킴
통상임금은 연장근로 등을 제공하기 전에 산정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용자와 근로자는 연장근로에 대한 비용 또는 보상의 정도를 예측하여 연장근로 등의 제공여부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연장근로 등이 실제 제공된 때에 가산임금을 곧바로 산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시점에서 근로자의 재직 여부’나 ‘근무일수의 충족 여부’ 등의 조건을 통하여 사후적 변동가능성이 있는 ‘실근로’를 ‘통상임금’과 연계하게 되면 통상임금의 사전적 산정 가능성이 약화된다고 설명하고 있다.⑤ 연장근로 등 억제라는 정책 목표에 부합하지 않음
통상임금 개념은 ‘연장근로 등의 억제’라는 근로기준법의 정책 목표에 부합하여야 한다. 근로기준법의 ‘소정근로시간’ 개념, ‘근로시간 제한, ’연장근로 가산수당‘ 등의 규정은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연장근로 등을 억제하고 연장근로 등의 가치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상을 해주려는데 취지가 있다. 하지만 고정성 개념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법령상 근거 없이 축소시켜 통상임금의 소정근로의 가치를 합당하게 평가한 단위 임금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통상임금 개념의 새로운 판단기준
2024년 대법원 전합 판결에서는 위와 같은 설명을 통해 2013년 대법원 전합 판결에서의 통상임금 판단기준 중 ‘고정성’을 제외하였다. 그리고 제시한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기준은 아래와 같다.① 통상임금의 개념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 제1항에서의 통상임금의 정의와 취지에 충실하게 통상임금의 개념을 해석하면,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을 의미한다. 그리고 통상임금의 본질은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에 제공하기로 정한 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기준임금이라고 설명한다.② 통상임금의 판단기준
통상임금은 근로자가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한 것에 대한 대가로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그에 부가된 조건의 존부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따라서 임금에 부가된 조건은 해당 임금의 객관적 성질을 실질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소정근로 대가성이나 정기성, 일률성을 부정하는 요소 중 하나로 고려될 수는 있지만, 단지 조건의 성취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사정만으로 통상임금성이 부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 재직조건부 임금 통상임금은 실근로와 구별되는 소정근로의 가치를 반영하는 도구 개념이므로, 계속적인 소정근로의 제공이 전제된 근로관계를 기초로 산정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근로자가 ‘재직’하는 것은 근로계약에 따라 소정근로를 제공하기 위한 당연한 전제이므로 ‘퇴직’은 소정근로 대가성과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어떠한 임금을 지급받기 위하여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부가되어 있다고 해서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라면 충족할 근무일수 조건, 즉 소정근로일수 이내로 정해진 근무일수 조건의 경우 그러한 조건이 부정되지 않는다. 다만 소정근로일수를 초과하는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은 소정근로를 제공하였다고 하여 지급되는 것이 아니고 소정근로를 넘는 추가 근로의 대가이므로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 성과급 근로자의 근무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성과급은 단순히 소정근로를 제공하였다고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업무성과를 달성하거나 그에 대한 평가결과가 어떠한 기준에 이르러야 지급되므로, 일반적으로 ‘소정근로 대가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근무 실적과 무관하게 최소한도의 일정액을 지급하기로 한 정한 경우 그 금액은 소정근로에 대한 대가에 해당한다. <2024년 전합 판결에 의해 변경될 2013년 전합 판결의 내용> 위 내용을 정리하면 2013년 통상임금 전합 판결의 내용 중 고정성을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판단기준)으로 삼은 부분, 그에 따라 재직조건부 임금, 근무일수 조건부 임금, 성과급의 통상임금성 인정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한 부분, 재직조건부 임금이 조건의 부가로 인하여 소정근로 대가성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판단한 부분이 변경된다.새로운 법리의 효력 범위
이번 통상임금 전원 합의체 판결 전 많은 경영자측에서 우려하던 부분은 본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 판단기준이 변경될 경우 부담할 인건비가 급증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보통 법원이 선언하는 법리는 그 이전의 사실관계에도 적용되는데, 2013년 대법원 전합 판결의 법리에 따라 통상임금 범위를 판단하여 인건비를 지급해 왔던 많은 기업들은 이번 판결을 통해 막대한 추가 인건비 부담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는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 범위에 포함될 경우 국내 기업의 연간 인건비 부담이 6.8조원 증가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대법원 전합 판결에서도 이러한 상황 등을 고려하여, 새로운 법리는 이 판결 선고일 이후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한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대해 판결문에서는 판례변경은 임금체계의 근간이 되는 통상임금 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이어서 집단적 법률관계인 임금 지급에 관한 근로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서, 새로운 법리를 전면적으로 소급 적용할 경우 종전 판례를 신뢰하여 형성된 수많은 법률관계의 효력에 바로 영향을 미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신뢰보호에 반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그동안 2013년 대법원 전합 판결의 통상임금 판단징표 중 ‘고정성’은 실제로 기업에서 통상임금을 낮추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학계에서도 비판이 이어져 왔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전합 판결로 인해 많은 기업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고,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분주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통상임금에 대한 법리 변경은 통상임금의 본질과 취지에 더욱 가까워진 만큼 언젠가는 필요한 작업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고용노동부에서도 통상임금에 대한 새로운 지침 마련을 통해 이번 판결에 따른 중소기업 등의 혼란을 조속히 해소할 수 있는 조치가 이루어지면 좋겠다.최신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