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은행의 풍경을 기억하시나요? 기억을 되짚어 떠올려 보자면, 사실 은행은 좀 무서운 곳이었어요. 무표정한 얼굴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무료해하는 사람들, 기계보다 더 차갑고 딱딱한 말투로 응대하는 직원, 그리고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와 서류들이 난무하던 공간이었죠. 우리에게 은행과 관련된 따뜻한 추억 하나조차 없는 건, 어쩌면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일까요. 은행에 가는 일이 치과에 가는 것만큼이나 싫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다행히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은행이 온라인 위주로 바뀌면서, 더 이상 은행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더랬어요. 마치 어색하고 어려운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한 듯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죠. 하지만, 이제는 은행도 달라지고 있어요. 직원들은 한결 더 상냥해졌고, 일반인들에게 다소 어려운 은행 업무를 돕기 위해 여러 방법이 시행되고 있죠. 차가웠던 은행의 온도가 한결 포근해지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큰 변화는, ‘공간’ 자체가 확 바뀌고 있다는 거예요. 그 중심에는 바로, ‘카페’가 있어요. ‘돈’을 다루는 가장 ‘이성적’인 공간인 ‘은행’이 어떻게 ‘감성적’인 ‘카페’를 만나게 됐을까요? 오늘은 이 새로운 풍경이 생겨난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해요.
포항 PHNH 카페 먼저, 소개해 드릴 공간은 ‘농협 카페’에요. 맞아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농협’이요. 동네에 하나씩은 있어서 너무도 익숙한 그 농협이 카페를 열었어요.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포항’에요. 포항과 농협의 영문 앞 글자를 하나씩 따서, ‘PHNH 카페’라고 이름 지은 이곳은 그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라고 해요. 무려 302평 규모라고 하는데요. 포항초(포항 시금치)를 사용한 음료와 지역의 특산물을 판매하고, 음악회와 바자회도 개최하는 등 지역민들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어요. 실제로 여러 사이트에도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농협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라는 식의 후기가 많아요. 덕분에 멀게만 느껴졌던 오래된 금융기업의 이미지가 친근하고 세련되게 변하고 있어요. 포항 이외에도 ‘충남 금산’에 ‘진산농협 농협 카페’도 있는데요. 여기선 금산의 특산물인 ‘인삼’을 활용해서 ‘인삼차’와 ‘인삼 셰이크’도 판다고 해요. 근처에 사신다면 오늘은 농협에서 찐~하게 커피 한 잔 어때요? 다음은 국민은행이에요. 이들은 일반 커피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비릿한 돈 냄새 대신 향긋한 커피를 선보이고 있어요. 노원역점은 커피빈, 서초점은 메가박스가 런칭한 스템커피에 자리를 내어주었죠. 호응도 꽤 좋은데요. 간단한 ATM 업무를 보러 왔다가 커피 향에 반해 커피까지 마시게 됐다는 후기 글을 종종 찾아볼 수 있어요. 또, 국민카드가 있으면 할인해 주는 이벤트도 하고 있어서 은행 안 카페의 장점과 특색을 잘 살린 지점들로 평가받아요.
하나은행 경복궁역 지점 커피빈 하나은행도 ‘커피빈’을 입점시켜 부드러운 느낌의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을지로 경복궁 역사점과 을지로 본점에서 운영 중인데요. 직장인들이 많은 지점의 특성을 이용해, 직장인에게 음료를 할인해 주는 등의 이벤트를 하곤 해요. 그리고 'H-PULSE'처럼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 공간도 운영 중이예요. 마치 갤러리에 방문한 듯, 금융을 넘어선 새로운 영감을 방문객들에게 선사해 주고 있어요. 은행, 확실히 예전에 비해 그 문턱이 훨씬 더 낮아졌죠?
이제 돈 냄새보다, 향긋한 커피 향기가 베어 나는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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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전문 은행들도 오프라인 카페를 열곤 해요.
‘카카오뱅크’나 ‘토스뱅크’ 같은 인터넷 전문 은행은 오프라인 지점이 없지만, 간헐적으로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열어 고객을 만나고 있어요. 카카오뱅크는 2024년 12월 서울 성수동 카페 '쎈느(Scène)'에서 '홀리데이 in 모임 아지트'라는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어요. 이곳에서는 카카오뱅크의 주요 서비스인 '모임 통장'을 주제로, 다양한 체험 활동과 함께 카페 음료를 즐길 수 있도록 했죠. 브랜드 경험과 재미를 고객에게 제공하며 함께 소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어요. 한편, 토스뱅크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토스뱅크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어요. 고객들이 토스뱅크 서비스에 대해 문의하거나,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지 않은 고령층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죠. 이곳은 카페는 아니지만, 마치 ‘북카페’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로 사랑받고 있어요. 실제로, 이전에는 카페로 영업 중이던 곳이었다는데요. 고객들이 편안하게 머물며 토스뱅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카페와 결이 비슷하죠.은행, 사람의 손길과 숨결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사실 요즘에는 대부분 인터넷 뱅킹이나 모바일 뱅킹으로 은행 업무를 보잖아요. 그러다 보니, 은행에 직접 가는 경우가 많이 줄었는데요. 고객으로서도 시간을 내어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은행도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요. 오프라인 은행과 인터넷 (모바일) 뱅킹을 모두 접한 기성세대들과는 다르게, MZ세대들은 은행 자체를 생소하게 느낀다고 해요. 실제로, 지난 2022년 우리 금융 연구소가 발표한 ‘MZ세대의 금융 플랫폼 이용 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요. 조사 기간 중, 근래 3개월간 MZ세대가 사용한 금융 채널은 모바일 뱅킹이 99.8%였대요. 그리고 3개월 사이 은행에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이 무려 10명 중의 6명 정도나 된다고 하고요.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은행은 이제 이름만 남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런 현상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심리적으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이제 오프라인 지점은 고객과의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경험의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거예요. 특히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에게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형 금융 공간'은 마치 약속 장소처럼 자연스럽게 다가가죠. 은행의 문턱을 넘는다는 부담감 대신, 편안한 카페에 들르듯 가볍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어서 심리적 거리도 훨씬 더 줄일 수 있고요. 그리고 최근 은행들은 오프라인 영업 점포를 통폐합하고 있어요.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말 국내 은행 점포 수(해외 점포 포함) 는 총 5천792곳으로, 전 분기 말보다 57곳이나 줄었어요. 언젠가부터 은행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 이유가 기분 탓만은 아닌 게 확실한데요. 하지만 아직 오프라인 수요를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영업점으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예요. 이러한 환경에서 카페는 고객들을 자연스럽게 은행으로 유도하는 미끼 역할을 맡고 있어요.우리의 삶에 스며드는 금융의 따스함
이제 금융은 더 이상 어렵거나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소박한 대화를 풀어가며 우리네 삶의 모습이 자연스레 스며드는 사랑방 같은 곳이죠. 이처럼 친근하고 따뜻한 모습을 하고, 금융이 우리의 곁으로 한발씩 다가오고 있어요. 오늘, 동네 은행에서 차 한 잔의 여유와 함께 새로운 금융 경험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최신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