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부가가치세법상 위탁매매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부가가치세법은 “위탁매매 또는 대리인에 의한 매매를 할 때에는 위탁자 또는 본인이 직접 재화를 공급하거나 공급받은 것으로 본다.”고 정하면서도(부가가치세법 제10조 제7항 본문) 위탁매매에 대한 정의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세법에서 민사법적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 개념에 관한 별도의 정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경우 민사법과 동일하게 해석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이나 조세법률주의가 요구하는 엄격해석의 원칙에 부합하므로(
대법원 2011두24842, 2013.3.14., 판결,
대법원 2019두58445, 2023.11.30., 판결 등),
부가가치세법 제10조 제7항의 위탁매매는
상법 제101조 이하에서 정하는 위탁매매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상법상 위탁매매인은 자기명의로써 타인의 계산으로 물건의 매매를 영업으로 하는 자를 의미한다(상법 제101조). 위탁매매라 함은 자기의 명의로 타인의 계산에 의하여 물품을 구입 또는 판매하고 보수를 받는 것으로서 명의와 계산의 분리를 본질로 하므로, 어떠한 계약이 일반 매매계약인지 위탁매매계약인지는 계약의 명칭 내지 형식적인 문언을 떠나 그 실질을 중시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05다6297, 2008.5.29., 판결,
대법원 2011다31645, 2011.7.14., 판결 등). 위탁매매와 일반적인 매매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매수인(또는 수탁자)이 물건을 다시 최종소비자에게 판매함에 있어 타인(매도인 또는 위탁자)의 계산으로 하는지 또는 자신(매수인 또는 수탁자)의 계산으로 하는지 여부이다.
나. 쟁점 거래의 실질이 위탁매매에 해당하는지 여부
위탁매매는 명의와 계산의 분리를 본질로 하므로 쟁점 거래가 위탁매매에 해당하려면 국군복지단의 군인 등에 대한 쟁점 제품의 판매로 인한 계산, 즉 그 경제적 효과가 원고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따라서 쟁점 거래가 위탁매매라면 국군복지단이 쟁점 제품을 판매하고 수취한 판매가액 전부가 우선 위탁자인 원고에게 귀속되고, 수수료에 대한 약정이 있으면 수수료가 국군복지단에게 지급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설사 그 과정이 상계처리 및 단축급부의 방식으로 진행되어 원고에게 귀속될 판매가격에서 약정 수수료를 제하고 남은 정산금만 국군복지단이 원고에게 지급하는 형태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판매가격이 얼마인지, 수수료인 복지금이 얼마인지 여부는 위탁자인 원고에게 고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심인 원심에서 인정된 사실에 의할 때, 원고는 국군복지단의 쟁점 제품 판매에 따른 대금을 직접 수령할 권한이 없었고, 국군복지단이 원고에게 제공한 결산결과통보서에도 관리수수료, 카드수수료 금액만 기재되어 있을 뿐, 판매가격 및 복지금에 대한 내용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고는 쟁점 제품의 판매가격 및 복지금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 이러한 거래구조가 위탁매매의 본질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대상판결은 “이 사건 제품의 판매가격은 원고의 시중최저판매가에 원고가 입찰 당시 제시한 할인율 등을 적용하여 결정되었고, 국군복지단은 이 사건 제품이 계약 당시 시중최저판매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이 확인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원고에게 판매가격 인하 등의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이러한 사정을 이유로 쟁점 제품에 대한 가격결정권이 원고가 아닌 국군복지단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국군복지단이 원고로 하여금 시중최저판매가보다도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도록 강제한 상황에서 단순히 저 사정만으로 가격결정권이 원고에게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대법원은 그동안 계약의 해석에 관하여 일관되게 “일반적으로 계약을 해석할 때 형식적인 문구에만 얽매여서는 안 되고 당사자 사이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가를 탐구하여야 한다. 당사자들 사이에 계약서의 문언과 다른 내용으로 의사가 합치된 경우 그 의사에 따라 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여 왔다(
대법원 2018다260299, 2021.11.25., 판결 등. 이른바 ‘자연적 해석’).
국세청이 1990년대부터 쟁점 거래가 위탁매매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의에 대하여 “위탁매매에 해당하지 않고, 군매점에 재화를 공급하는 사업자는 군복지기관을 공급받는 자로하여 세금계산서를 교부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회신하였던 데다가(
부가22601-107, 1991.1.25.,; 부가46015-920, 2000.4.26..; 부가46015-3882, 2000.11.28. 등), 쟁점 제품을 군인 등에게 판매하는 주체가 국군복지단이어야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므로(부가가치세법 제26조 제1항 제19호, 같은 법 시행령 제46조 제3호 가목), 원고와 국군복지단 모두 쟁점 거래를 그동안의 관행과 달리 위탁매매의 성질을 가진 계약으로 체결할 이유가 없었고, 실제로 쟁점 거래가 일반 매매계약에 해당한다는 인식하에 원고를 공급자로, 국군복지단을 공급받는 자로 하여 세금계산서를 수수하면서 거래징수도 하지 않았다. 즉, 비록 쟁점 계약서가 ‘위ㆍ수탁거래 계약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더라도, 양 당사자는 쟁점 거래가 일반 매매계약에 해당한다는 것에 의사합치가 분명하게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사정을 종합할 때, 쟁점 거래는 위탁매매가 아닌 일반적인 매매라고 해석할 여지가 더 많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다.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어떠한 거래가 부가가치세법상 위탁매매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 계약의 명칭 또는 형식적인 문언을 떠나 그 실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대상판결은 실제 판단에서는 계약서의 명칭이나 문언 등 외형적 요소를 중시하거나, 다소 쉽게 수긍되지 않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려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는 실질 판단을 강조하는 법리와는 모순되는 접근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사자들이 의도하거나 인식한 법률관계를 부인할 경우 총 공급가액의 10%나 되는 금액을 손쉽게 부가가치세로 징수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가산세 효과까지 더하면, 부가가치세는 과세관청 입장에서 매우 손쉽게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식의 과세를 만연히 허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전단계 세액공제법을 채택하고 있는 부가가치세제 아래에서 세금계산서의 주요기능 중 하나는 당사자 간의 거래를 노출시킴으로써 소득세와 법인세 등의 세원포착까지 용이하게 하는 납세자간 상호검증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2002두5771, 2004.11.18.,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그런데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원고와 국군복지단이 기존에 수수한 세금계산서에 의하더라도 이러한 기능을 저해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위탁매매인지 아닌지는 대상판결과 그 원심판결도 결론을 달리할 정도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사안이 아니고, 이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앞서 본 것처럼 국세청은 1990년대부터 대상판결 사안에 대해 위탁매매가 아니라고 일관되게 회신하고 있었다.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은 2019.2.12. 개정되면서 (i) 거래의 실질이 위탁매매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거래 당사자 간 계약에 따라 위탁매매가 아닌 거래로 하여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은 경우, (ii) 거래의 실질이 위탁매매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래 당사자 간 계약에 따라 위탁매매로 하여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은 경우 모두에 대하여 매입세액 공제를 허용하는 규정은 신설하였는데(현행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제75조 제9호 가목, 나목), 이 역시 위탁매매와 일반적인 매매의 구분이 어렵고, 이를 이유로 납세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점에서 입법된 것이다. 이러한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위탁매매 여부 및 그에 따른 부가가치세 납부의무 범위를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와 달리 판단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결국 대상판결은, 그 결론의 당부를 차치하더라도, 법원조차도 판단이 갈리는 명확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도 과세관청이 납세자의 세무처리를 반대방향으로 부인하고 손쉽게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도록 하는 과세편의주의적인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비판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