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쟁점의 정리
구 상속세 및 증여세법(2007.12.31. 법률 제882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5조의2 제1항 본문은 “권리의 이전이나 그 행사에 등기 등을 요하는 재산에 있어서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에는
「국세기본법」 제14조의 규정에 불구하고 그 명의자로 등기 등을 한 날에 그 재산의 가액을 명의자가 실제 소유자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면서, 그 단서 제1호는 “조세회피의 목적 없이 타인의 명의로 재산의 등기 등을 하거나 소유권을 취득한 실제소유자 명의로 명의개서를 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에 대해서는 그 본질이 행정벌인데 세금인 증여세가 부과된다는 점, 명의신탁을 통하여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하고 비난가능성도 적은 명의수탁자에게 1차적인 제재를 가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끊임없이 그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어 왔고, 여러 차례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종래 대법원은 납세자에게 조세회피목적의 부존재에 대하여 지나치게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였고, 그에 따라 조세회피목적 요건이 사실상 형해화되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근 대법원은 조세회피목적의 부존재에 대한 납세자의 증명 부담을 완화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취지의 판시를 하고 있다.
대상 판결은 결국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려는 대법원의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① 명의신탁의 당사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에 관한 명의신탁자 확정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 그리고 ② 어느 경우에 ‘명의신탁에 부수하는 사소한 조세경감’에 해당하여 조세회피 목적이 부정되는지 여부를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나. 명의신탁 당사자의 확정 : 이 사건 명의신탁의 명의신탁자는 누구인가?
원심 법원은 B법인이 이 사건 주식을 원고1에게 명의신탁하였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하고 원고2를 명의신탁자로 보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원심 법원은 이 사건의 법률관계가 명의신탁자인 원고2가 B법인과의 종전의 명의신탁 관계를 해소하면서, 원고1과의 명의신탁관계를 설정하는 2단계 행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원심 법원의 판단에는, 원고2가 A법인부터 D법인까지 이어지는 지주회사 지배구조 정점의 실질적인 최종 1인 주주라는 점, 그리고 B법인은 상장주관업무를 담당한 증권회사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명목회사(Paper Company)”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대법원은 B법인과 그 상위 지주회사는 적법하게 설립된 법인으로 각 법인격을 가지는 이상, 원고2가 지주회사 지배구조의 최종 1인 주주로서 명목회사인 B법인을 지배·관리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B법인의 법인격이나 이를 전제로 한 사법상 효과 및 법률관계를 부인하여 B법인이 아닌 원고2가 A법인의 주식을 취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자신의 명의로 주식매매계약 및 주식인수계약을 체결한 B법인은 대외적으로는 물론, 지주회사 지배구조의 최종 1인 주주인 원고2와의 관계에서도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보이며, 이와 달리 원고2가 B법인과의 관계에서 소유권을 유보하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원심에서 중요하게 판단하였던 원고2의 세무조사 당시 진술(명목회사인 B법인을 설립하여 B법인을 통해 A법인의 주식을 취득하였다는 취지) 및 원고2와 원고1 사이의 합의서(주식 소유에 따른 의결권 행사 및 이에 따른 수익은 원고2에게 귀속된다는 취지)에 관하여, 대법원은 위 진술 및 합의서만으로는 원고2와 B법인 사이에 명의신탁 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 없으며, 합의서 기재 내용 또한 원고2가 명의신탁자인 B법인의 지배주주로서 행사하는 권리와 그에 대응하는 의무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단의 근저에는, 설령 제한된 특정 목적을 위해 설립된 명목회사라 하더라도, 적법하게 설립되었다는 법적 실체 및 법인격, 그리고 이를 토대로 성립된 법률관계를 섣불리 부인할 수는 없다는 고려가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설령 원고2가 명목회사인 B법인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면서 운영하였더라도, 이러한 사정만을 이유로 섣불리 원고2와 B법인 사이에 명의신탁 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며, B법인의 원고1에 대한 명의신탁을 원고2의 원고1에 대한 명의신탁으로 볼 수도 없다고 확인한 것이다.
다. 조세회피 목적의 부정 : 명의신탁에 부수한 사소한 조세경감
한편, 대법원은 B법인이 원고1에게 A법인 주식을 명의신탁한 주된 이유는 A법인이 코스닥 시장 상장심사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명의신탁에 부수하여 사소한 조세경감이 생긴 경우에 불과하므로 조세회피 목적은 부정된다고 판단하였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B법인이 보유하고 있던 A법인 주식이 A법인 발행 총 주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하면, ① 과점주주에 대한 간주취득세 및 제2차 납세의무에 대한 조세회피 목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편, ② 이 사건 명의신탁 이후 A법인이 배당을 실시한 것은 단 한 차례이며, 그 배당을 B법인 자신의 명의로 받는 경우의 원천징수 세액과 명의수탁자인 원고1 명의로 받는 경우의 원천징수 세액의 차이가 제반 사정에 비추어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고 설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