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기속력의 의의 및 범위
재결의 기속력이란 피청구인인 행정청과 관계행정청이 재결의 취지에 따라 행동할 실체법적 의무를 지우는 효력을 말한다. 한편, 재결의 기속력이란
「행정소송법」 제30조에 규정되어 있고, 통설 및 판례의 입장이라 할 수 있는 특수효력설은 기속력을 취소판결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법률이 특별히 인정한 효력으로 본다. 세법의 영역에서도, 재결의 기속력을 규정한
「행정심판법」 제49조,
「국세기본법」 제80조의 규정 내용이 취소판결의 기속력에 관한
「행정소송법」 제30조의 규정과 차이가 없고, 그 취지도 동일하다고 보이므로, 재결의 기속력도 재결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속력의 객관적 범위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재결의 기속력은 재결의 주문 및 그 전제가 된 요건사실의 인정과 판단, 즉 처분 등이 위법한 것으로 판단된 개개의 처분사유에만 미치고 재결의 결론과 직접 관계없는 방론이라든가 간접사실에 대한 판단에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므로, 종전 처분과 다른 사유를 들어서 처분을 하는 것은 기속력에 저촉되지 않는다(대법원 99두3324, 2001.9.14. 선고). 여기에서 동일한 사유인지 다른 사유인지는 종전 처분에 관하여 위법한 것으로 재결에서 판단된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에 있어 동일성이 인정되는 사유인지 여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대법원 2003두7705, 2005.12.9. 선고).
조세 부과처분에 대한 재결의 기속력은 재결에서 판단된 것과 동일한 사실관계 내에서 동일한 과세대상에 대하여 동일한 과세원인으로 재처분한 경우로 제한되고, 과세의 절차나 형식상의 위법사유로 취소되는 경우는 그 사유를 보완하거나 시정함으로써 다시 처분할 수 있으며 실체적인 위법 사유가 문제된 경우에 있어서도 당해 처분청은 재결의 취지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 재결에 적시된 위법사유를 시정·보완하여 정당한 조세를 산출한 다음 새로이 이를 부과할 수 있고, 이러한 새로운 부과처분은 재결의 기속력에 저촉되지 아니한다(대법원 99두3324, 2001.9.14. 선고).
나. 관련 판결
대법원은 과거 “재결의 기속력은 재결의 주문 및 그 전제가 된 요건사실의 인정과 판단, 즉 처분의 구체적 위법사유에 관한 판단에만 미친다. 따라서 종전 처분이 재결에 의하여 취소되었더라도 종전 처분 시와 다른 사유를 들어 처분을 하는 것은 기속력에 저촉되지 아니한다. 여기서 동일한 사유인지 다른 사유인지는 종전 처분에 관하여 위법한 것으로 재결에서 판단된 사유와 기본적 사실관계에서 동일성이 인정되는 사유인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여 재결의 기속력에 관한 원칙적인 판단 기준을 정리하였다(대법원 2003두7705, 2005.12.9. 선고 등).
한편, ‘(
대법원 2014두40029, 2017.2.9.) 선고’의 사안에서는, 원고가 법인세 체납으로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압류 당하자, 해당 토지가 교육용 기본재산으로서 사립학교법 등 관련법령에 따라 경매목적물이 될 수 없는 부동산이어서 압류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조세심판원은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여 압류 처분을 취소하는 재결을 하였으나, 과세관청이 다시 해당 토지를 압류하는 처분을 하였다. 이때, 대법원은, “① 이 사건 재결에서 조세심판원은 해당 토지가 교육용 기본재산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 이를 교육용 기본재산으로 판단하였을 뿐 그 실제 이용현황에 관하여는 아무런 사실인정이나 판단을 하지 아니한 점, ② 종전 압류처분 당시 피고는 원고 소유의 부동산이 사립학교 교육에 직접 사용되는 교육용 기본재산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모두 압류하였던 점, ③ 이 사건 압류처분 당시에도 원고와 경상북도 교육청은 학교법인 재산대장 등에 해당 토지를 교육용 기본재산으로 기재하고 있었으나, 피고는 원고 소유의 부동산들 중 일부 토지만을 압류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해당 토지는 교육용 기본재산에 해당하지 않고, 이 사건 처분은 토지가 교육용 기본재산으로 등재되어 있어서 압류금지재산에 해당한다고 본 이 사건 재결의 사실인정 및 판단과는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하지 아니한 사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사건 재결의 기속력에 저촉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반면에, ‘(
대법원 2016두42999, 2016.10.27.) 선고’에서는, 조세심판원이 주식의 포괄적 교환에 대하여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35조를 적용하여 과세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동법 제42조를 적용하여 증여세를 부과한 처분은 부당하다는 이유로 이를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에 따라 과세관청이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35조에 따라 증여세를 부과하였는바, 이러한 재처분이 적법한 것인지 문제되었다. 이에 대법원은 증여세 과세에 기초가 되는 사정에 아무런 변경이 없는 사건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2조 제1항 제3호를 처분사유로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불복과정에서 취소한 종전처분을 번복하여 다시 종전 처분을 되풀이 하는 것이어서 위법하고, 위 조항에 근거한 종전 처분을 취소한 종전 조세심판결정의 기속력에 저촉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다. 대상 판결의 검토
대상판결은, ‘조세심판절차에서 원고의 심판청구 사유가 옳다고 인정하여 이 사건 종전 처분을 취소하였음에도, 동일사항에 관하여 특별한 사유 없이 이를 번복하고 종전의 처분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므로 위법하다’, ‘원심은 이 사건 처분이 이 사건 종전 처분에 관한 재결의 기속력에 반하지 않는다는 등의 잘못된 전제 아래 이 사건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고 하여, 이 사건 처분이 ‘재결의 기속력’에 반하여 위법하다는 점에 대하여는 명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대상판결은 그러한 판단의 전제로서, 원심과 달리 ‘원고가 창업벤처 중소기업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감면기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그와 같은 결론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어서, 이와 다른 결론에 이른 원심의 판단 과정에 구체적으로 어떤 위법이 있는지 알기 어렵고,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에 관한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정리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향후 유사 사안에서 실무상 혼선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재결의 기속력이 적용되는 객관적 범위, 즉 종전의 처분사유와 재처분사유의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를 확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구체적 사건에서의 판례의 집적을 통하여 해결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우리나라는 임의적 행정심판 전치주의(「행정소송법」 제18조)의 예외로 국세기본법이 과세관청의 처분에 대해 이의신청이나 심판청구와 같은 행정심판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여(「국세기본법」 제56조 제2항) 필요적 전치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과세관청의 처분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필요적 전치주의를 채택한 이유는, 복잡하고 전문적·기술적 성격을 갖는 조세법률 관계의 특수성과 행정심판제도의 자율적 행정 통제 기능 등을 고려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조세심판원의 결정과 달리 특별한 사정없이 이에 반하는 처분을 허용하게 되면, 행정심판제도의 자율적 행정통제나 그로 인한 납세자의 권익구제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상판결은 ‘재결의 기속력’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기본적 사실관계의 동일성’의 범위를 폭넓게 해석하였는바, 이로써 행정심판제도의 자율적 행정통제나 그로 인한 납세자의 권익구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