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과세처분이 당연무효인지를 판단하는 기준
(1) 전통적인 판단기준 - 중대명백설
지금까지 대법원의 주류적 판례들은 이른바 ‘중대명백설’에 입각하여 과세처분의 하자가 당연무효의 사유인지 아니면 취소 사유인지를 판단하여 왔다. 중대명백설에 따르면 과세처분의 하자의 내용이 중대하고 그 하자가 외관상 명백하여야 당연무효에 해당하고, 그중 어느 하나의 요건이라도 갖추지 못한 때에는 취소 사유에 불과하다. 이는 일반 행정처분에 관한 논의를 과세처분에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굳이 중대명백설을 주류적 판례의 입장이라고 말한 것은 이른바 명백성 보충요건설의 입장으로 이해되는 판결이 간혹 선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
대법원 2008두11716, 2009.2.12.) 선고가 대표적인 예이다. 위 판결은 “취득세 신고행위는 납세의무자와 과세관청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취득세 신고행위의 존재를 신뢰하는 제3자의 보호가 특별히 문제되지 않아 그 신고행위를 당연무효로 보더라도 법적 안정성이 크게 저해되지 않는 반면, 과세요건 등에 관한 중대한 하자가 있고 그 법적 구제수단이 국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미비함에도 위법한 결과를 시정하지 않고 납세의무자에게 그 신고행위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시키는 것이 과세행정의 안정과 그 원활한 운영의 요청을 참작하더라도 납세의무자의 권익구제 등의 측면에서 현저하게 부당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예외적으로 이와 같은 하자 있는 신고행위가 당연무효라고 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였다. 명백성 보충요건설은 어떠한 행정처분이 당연무효로 되기 위하여 하자의 중대성은 항상 그 요건이 되지만, 명백성은 항상 요구되는 것이 아니고 행정의 법적 안정성이나 제3자의 신뢰보호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만 가중적으로 요구되는 요건으로 파악한다.
중대명백설이 도전을 받고 있는 이유는, 구체적 사안의 특수성을 무시한 단일의 경직된 기준으로 당연무효 사유와 취소 사유를 구분함으로써 당연무효의 인정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여 국민의 권리구제에 소홀하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과세처분의 경우에는 일반 행정처분과는 달리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적어도 과세처분의 경우에는 이를 완화하거나 명백성 보충요건설 또는 중대설에 의하여 당연무효 사유와 취소 사유를 구분하여야 한다는 비판적 견해가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대설은 행정처분에 중대한 하자만 있으면 당연무효가 되고 명백성은 당연무효의 요건이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대립은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중대명백설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에 관한 논쟁은 어쩌면 해묵은 것이다. (
대법원 94누4615, 1995.7.11.) 선고 전원합의체판결에서도 견해가 대립되었다. 다만 이는 일반 행정처분에 관한 논쟁이었다. 소수의견은 “중대명백설에 있어서의 명백성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한 까닭에 명백성의 요건은 취소 사유와 무효 사유를 구분하는 기준으로서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명백성의 요건을 그 문언적 의미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하거나 또는 하자 자체의 성격상 그 존재가 외관상 명백하다고 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하자가 아무리 중대하고 그로 인하여 국민의 권익이 크게 침해되었다 하여도 그 하자를 무효 사유로 볼 수 없게 되는 결과 위법한 행정처분으로 불이익을 입은 국민의 권리구제 기회를 합리적으로 필요한 범위를 넘어 부당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행정행위의 무효사유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의 명백성은 행정처분의 법적 안정성 확보를 통하여 행정의 원활한 수행을 도모하는 한편 그 행정처분을 유효한 것으로 믿은 제3자나 공공의 신뢰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보충적으로 요구되는 것으로서, 그와 같은 필요가 없거나 하자가 워낙 중대하여 그와 같은 필요에 비하여 처분 상대방의 권익을 구제하고 위법한 결과를 시정할 필요가 훨씬 더 큰 경우라면 그 하자가 명백하지 않더라도 그와 같이 중대한 하자를 가진 행정처분은 당연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다수의견은 중대명백설을 지지하였다.
이러한 논쟁은 최근의 (
대법원 2017다242409, 2018.7.19.)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일반 행정처분이 아닌 과세처분을 대상으로 재현되었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여전히 다수의견은 “과세처분이 당연무효라고 하기 위하여는 그 처분에 위법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한다”고 하여 중대명백설을 유지하였다. 그 근거로는 조세행정의 특수성, 전문성 등을 고려한 조세법상 구제절차에 대한 입법부의 정책적 판단 존중, 국가 재정의 기초로서 공익성과 공공성 등의 성격을 갖는 조세행정의 안정성 유지 등을 들었다. 다만 다수의견도 중대명백설이 납세자의 권익구제에 미흡하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구체적 사안에서 납세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 매우 부당한 경우에는 납세자를 구제할 수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과세처분의 당연무효를 판별함에 있어서는 구체적 사안 자체의 특수성에 관하여 합리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고, 나아가 과세처분에 객관적으로 타당한 법적 근거와 합리성이 없는 때에는 이를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이에 대하여 소수의견은 과세처분에 대하여 중대명백설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그 타당성이 더욱 부족하다고 비판하였다. 그 논거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납세의무에 관한 법령이 충분히 명확하지 못하여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그러한 법령에 바탕을 둔 세금의 부과·신고·납부는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역행하는 것으로서 그 효력이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둘째, 과세처분에 납세의무에 관한 법령을 잘못 해석한 중대한 하자가 있고, 그로써 납세의무 없는 세금이 부과·납부된 경우, 그 과세처분의 효력을 무효로 보지 않는 것은 잘못된 법령 해석으로 인한 불이익을 과세관청이 아닌 납세의무자에게 전가시키는 결과가 되어 납득할 수 없다. 셋째, 과세관청이 어느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하여 법령의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해석론에 기초하여 과세처분을 하였으나, 그 해석론이 잘못되었다는 법리가 뒤늦게나마 분명하게 밝혀져 과세처분에 정당성이 없다는 사정이 확인되었으면, 국가는 충분한 구제수단을 부여하여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바로잡는 것이 마땅하고, 국가가 그러한 구제수단을 마련하지 않거나 구제수단을 제한한 채 납부된 세액의 반환을 거부하고 그 이익을 스스로 향유한다면, 국민의 권리와 재산을 지킨다는 본연의 존립 목적에 반한다. 넷째, 과세처분이 무효로 인정되기 위하여 하자의 중대성과 명백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보더라도, 적어도 과세처분에 적용된 과세법리가 납세의무에 관한 법령을 잘못 해석·적용한 데에서 비롯되었음이 대법원판결로 확인된 경우까지 그 판결 선고 이전에 하자의 명백성 요건이 결여되었다는 점을 내세워 하자가 무효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여서는 안 된다.
(3) 소결
중대명백설에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세처분에 대하여 중대명백설을 계속 유지하여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위 (
대법원 2017다242409, 2018.7.19.)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에서 지적하는 여러 가지 논거는 굳이 이를 부연하여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합리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고 논리 자체도 탄탄하다. 그에 비하여 다수의견이 지적하는 논거는 빈약하게만 느껴진다. 입법자의 정책적 결단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하지만, 중대명백설은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일 뿐 입법자가 법령으로 정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과세행정의 안정성은 다수의견이 근거로 드는 조세행정의 특수성, 전문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조세행정의 특수성과 전문성으로 인하여 과세처분에 대해서는 과세관청의 경정권이 넓게 보장되어 있다. 즉 과세관청은 납세자의 신고는 물론 자신의 과세처분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부과제척기간(일반적으로는 5년이지만, 10년 또는 15년의 장기인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과세관청이 과세요건사실이 있음을 안 날부터 1년이어서 사실상 제한이 없는 경우도 있다.
「국세기본법」 제26조의2 참조)이 경과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재처분을 할 수 있다. 납세자도 5년 동안 경정청구권을 행사하여 자신이 신고한 세액을 다툴 수 있다(「국세기본법」 제45조의2 제1항). 다수의견은 조세행정의 안정성이 요구된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국가 재정의 기초로서 공익성과 공공성을 들고 있으나, 근거 없는 부당한 과세로 국가 재정을 확보하는 것은 정당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세법은 폭넓은 경정청구권의 도입을 통하여 국가 재정의 확보보다는 납세자의 권리보호가 우선되어야 함을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신고납부제도가 정착되어 국가 세수의 대부분 납세자의 신고에 의하여 채워지고 국가가 세무조사를 통하여 부과하는 세금은 전체 세수의 2~3%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국가 재정이나 국세 행정의 안정성을 이유로 납세자의 권리보호를 뒤로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또한 과세처분은 제3자의 신뢰보호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특히 조세는 반대급부 없이 국가가 일방적으로 부과하여 징수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에 비추어 보아도 국가는 납세자에게 충분한 구제절차를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과세관청이 법률해석을 잘못하여 과세한 경우는 그 필요성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이웃인 일본과 비교하여 보아도 우리나라의 납세자 권리보호는 미흡한 점이 많다. 우리는 1994년 말에 비로소 국세기본법을 개정하여 후발적 경정청구제도를 도입하였으나, 일본은 1962년 소득세법에, 1970년 국세통칙법에 후발적 경정청구제도를 도입하였다. 특히 2006년에는 ‘법령해석의 변경’을 후발적 경정청구사유로 새로 규정하였다. 즉 일본 「국세통칙법 시행령」 제6조 제1항 제5호는 “국세청장관의 법령의 해석이 경정 또는 결정에 관한 심사청구 또는 소송에 관한 재결 또는 판결에 따라 변경되어 변경 후의 해석이 국세청장관에 의해 공표됨으로써 당해 과세표준 등 또는 세액 등이 달라지게 되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후발적 경정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입법은 납세자의 권리를 넓게 보장하는 것으로서 조세행정의 법적 안정성이나 제3자의 신뢰보호 등에 관한 종전의 논의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위와 같은 입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아직 그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당연무효 사유를 넓게 인정하는 방법으로라도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도 다수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나. 대상판결의 검토 및 평가
이 사건 감경조항은 “공공시설용 토지로의 도시관리계획의 결정 및 도시관리계획에 관한 지형도면의 고시”만을 재산세 경감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언상으로는 다른 요건을 상정하기 어렵다. 다만 원심판결도 지적하였듯이 그 입법취지에 비추어 보면 의문이 있을 수는 있다. 당초 이 사건 감경조항은 도시관리계획의 결정 이후 미집행으로 사권이 제한되고 있는 토지 소유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법취지를 고려하면 이미 도시관리계획이 집행된 이 사건 토지에 대하여 이 사건 감경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사건 감경조항은 그 문언상의 요건이 너무나 명백하여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대상판결은 이처럼 법령의 문언의 의미가 명확한 경우에는 입법취지 등을 고려하여 해당 법령의 적용요건을 추가하는 것은 법령에 대한 합목적적 해석의 범위를 넘는 자의적이 해석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의적인 해석에 기초한 과세처분은 그 하자가 중대할 뿐만 아니라 명백하여 당연무효라고 보았다.
종래 과세관청의 잘못된 법령해석에 기초한 과세처분의 하자가 명백한지에 대해서는 “그 법률관계나 사실관계에 대하여 그 법령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법리가 명백히 밝혀지지 아니하여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때에는 과세관청이 이를 잘못 해석하여 과세처분을 하였더라도 이는 과세요건사실을 오인한 것에 불과하여 그 하자가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에 따라 하자의 명백성을 인정한 사례가 매우 드물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종전의 법리는 유지하면서도, “과세관청이 법령 규정의 문언상 과세처분 요건의 의미가 분명함에도 합리적인 근거 없이 그 의미를 잘못 해석한 결과, 과세처분 요건이 충족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해당 처분을 한 경우에는 법리가 명백히 밝혀지지 아니하여 그 해석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함으로써 과세관청의 해석이 합리적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하자의 명백성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실무상 법령의 문언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과세의 필요성만을 이유로 법령을 그 문언과 달리 해석하여 과세처분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종래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는 하자의 명백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상판결은 이러한 사안의 경우에도 하자의 명백성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선언하였다는 점에서 종전보다 납세자의 권리보호에 진일보한 것으로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