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납세의무
세법은 조세채무자에게 체납처분을 집행하여도 징수할 금액이 부족한 경우에는 그와 일정한 관계에 있는 자에게 그 부족액을 납부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이처럼 납세자가 납세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경우에 납세자를 갈음하여 납세의무를 지는 자를 제2차 납세의무자라 한다(국세기본법 제2조 제11호).
제2차 납세의무는 조세징수의 확보를 위하여 원래의 납세의무자의 재산에 대하여 체납처분을 하여도 징수하여야 할 조세에 부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그 원래의 납세의무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제3자에 대하여 원래의 납세의무자로부터 징수할 수 없는 금액을 한도로 하여 보충적으로 납세의무를 부담케 하는 제도로서, 형식적으로 제3자에 귀속되어 있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원래의 납세의무자에게 그 재산이 귀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도 공평을 잃지 않는 경우 등 형식적 권리의 귀속을 부인하여 사법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피하면서 그 권리귀속자에게 보충적으로 납세의무를 부담케 하여 징수절차의 합리화를 아울러 도모하려는 제도이다(대법원 1982.12.14. 선고 82누192 판결).
현재 세법상 제2차 납세의무는 ① 청산인 등의 제2차 납세의무(국세기본법 제38조,
지방세기본법 제45조), ② 출자자의 제2차 납세의무(국세기본법 제39조,
지방세기본법 제46조), ③ 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국세기본법 제40조,
지방세기본법 제47조), ④ 사업양수인의 제2차 납세의무(국세기본법 제41조,
지방세기본법 제48조) 등이 있다.
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
국세기본법 제40조는 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국세의 납부기간 만료일 현재 법인의 무한책임사원 또는 과점주주의 재산으로 그 출자자가 납부할 국세ㆍ가산금과 체납처분비에 충당하여도 부족한 경우에는 그 법인은 ① ‘정부가 출자자의 소유주식 또는 출자지분을 재공매하거나 수의계약으로 매각하려 하여도 매수희망자가 없는 경우’ 또는 ② ‘법률 또는 그 법인의 정관에 의하여 출자자의 소유주식 또는 출자지분의 양도가 제한된 경우(국세징수법 제61조 제4항에 따라 공매할 수 없는 경우는 제외한다)’에만 그 부족한 금액에 대하여 제2차 납세의무를 진다(국세기본법 제40조 제1항).
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는 쉽게 말해 출자자가 내지 못한 세금을 법인으로 하여금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원래는 체납자인 출자자의 주식을 경매하는 방식으로 체납세액을 징수하면 충분하지만, 법률 내지 사실상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정한 경우에 법인에 대하여 해당 출자자가 납부하여야 할 세금을 내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한도는 법인의 순자산 가운데 해당 출자자의 주식소유 비율이다.
이러한 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는 법인의 출자자와 법인이 서로 동일한 이해관계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그 근거로 한다. 특히 개인사업자가 그 사업용 개인재산을 법인에 출자하여 법인으로 조직을 변경하는 경우에 그 주식은 시장성이 없으면서도 개인재산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출자자의 소유주식 또는 출자지분의 양도가 제한된 경우
출자자의 소유주식 또는 출자지분이 환가가 가능하다면 그 주식 또는 지분으로 국세를 징수하면 될 것이므로 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문제된다.
합명회사 및 합자회사의 지분은 상법 규정에 의하여 다른 무한책임사원 전원의 동의가 없으면 양도할 수 없으므로, 환가 전에 무한책임사원 중 1인이라도 환가에 의한 지분양도에 대하여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는 양도가 제한된 때에 해당한다(국세기본법 기본통칙 40-0…1). 반면, 담보로 제공된 주식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징세46101-571, 1999.11.30.).
조세심판원은 국세징수법상 체납자의 압류재산에 대한 공매제한은 소송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체납자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에도 이를 근거로 하여 법인에게 제2차 납세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은 오히려 법인의 재산에 대하여 환가를 계속할 수 있어 제3자의 납세의무를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동 법인의 채권자 등 관련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점 등에 비추어 국세징수법상 공매제한을 법률에 의하여 출자자의 소유주식의 양도가 제한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조심2013서4524, 2014.10.21. 등).
법인이 상법에서 정한 주권의 발행시기가 경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권을 발행하지 아니한 경우, 세무서장은 체납자인 주주가 회사에 대하여 가지는 주주권을 압류하고 일정기간 내에 주권을 발행하여 세무공무원에게 인도하라는 뜻을 통지하여야 한다. 만일 법인이 그 일정기간 내에 주권을 발행하지 아니하고
상법 제335조 제3항 후단(회사성립 후 또는 신주의 납입기일 후 6월이 경과한 때)의 규정에 해당하는 때에는 주식에 대한 매각절차를 진행하여야 하며, 그 결과 매수 희망자가 없고 해당 체납자가 과점주주인 경우에는 법인에게 제2차 납세의무를 지울 수 있다(국세기본법 기본통칙 40-0…2).
대법원은 “법인이 이미 주권을 발행한 경우에는 과세관청의 주권인도 요구를 그 법인이 거절하였다고 하여 그와 같은 사유만으로
국세기본법 제40조 제1항 소정의 주식의 양도가 제한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이 명백하고, 그 법인이 주권을 발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상법 제335조 제2항에 의하면 회사성립 후 또는 신주납입기일 후 6월이 경과한 때에는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유효하게 주식을 양도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 그 법인이 주권을 발행하지 아니한 채 주권을 발행하여 인도하라는 과세관청의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고 하여 그와 같은 사유만으로는 위 법조항 소정의 법률에 의하여 주식의 양도가 제한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으며, 나아가 위와 같은 사정들이 있다고 하여
국세기본법 제40조 제1항 제1호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보아 회사가 과세관청의 주권 발행ㆍ인도 요구에 불응하는 것은 출자자의 소유주식 또는 출자지분의 양도가 제한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95.9.26. 선고 95누8591 판결).
대상판결의 의의
원심은 국제관습법상 홍콩 법인인 원고법인의 주식을 대한민국 과세관청이 강제집행권을 행사하여 압류하거나 처분할 수 없다는 점을 근거로 원고법인의 주식이 법률에 의하여 양도가 제한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참고로 제1심 역시 바하마 소재 A법인이 주주로 되어 있는 홍콩 법인인 원고법인 주식은 대한민국 조세법을 적용하여 매도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15.2.5. 선고 2014구합51791 판결). 그러나 원심판결과 달리 대상판결은 단지 국세징수법에 따른 압류 등 체납처분절차가 제한된다는 사정만으로는
국세기본법 제40조 제1항 제2호에서 말하는 ‘법률에 의하여 출자자의 소유주식 등의 양도가 제한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과거부터 대법원은 제2차 납세의무는 보충적으로 발생하는 성질의 것이고, 조세법규의 해석은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 성립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하였다(대법원 1995.9.26. 선고 95누8591 판결 등). 제2차 납세의무 제도는 조세 징수의 확보 측면에서 실효성 있는 수단에는 해당하지만 제2차 납세의무자 입장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조세를 부담하게 되고, 타인이 체납한 조세에 대하여 납부책임을 부담하여 사법상 거래안전을 해칠 우려 역시 존재한다.
따라서 제2차 납세의무 관련 규정들을 유추해석하거나 확대해석하기보다는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할 것이고,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입장에서 수긍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실무상
국세기본법 제40조 규정에 따라 법인에 대하여 제2차 납세의무를 부담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국세기본법 제40조 제1항은 출자자의 주식에 압류 등 체납처분절차가 제한되는 경우를 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가 성립할 수 있는 사유로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제2차 납세의무 관련 규정을 확대해석하는 것은 납세의무자에게 불측의 손해를 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체납처분절차가 제한된다는 사정만으로 ‘법률상 주식의 양도가 제한’된다고 볼 수도 없다. 대상판결은 체납자의 주식이 외국회사의 주식으로 국세징수법에 의한 압류 등 체납처분절차가 제한되는 경우가 법인의 제2차 납세의무 성립요건인 ‘법률에 의하여 출자자의 소유주식 등의 양도가 제한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최초의 판결로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제2차 납세의무 성립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여 납세자의 권리를 보호하였다는 점에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