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대상판결에 대한 평석
1. 대상판결은 종전 대법원 판례의 법리가 국내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거래 구조를 변경한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종전 대법원 2000.1.21. 선고 97누11065 판결(이하 ‘한전판결’)을 비롯하여 다수의 판례
2)에서 소프트웨어의 도입 대가가 사용료소득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다. 그리고 위 판례 사안들은 모두 해외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국내의 최종 사용자(end user)에게 소프트웨어를 ‘직접 공급’하는 방식으로 계약이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 문제된 사안은 해외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A사가 국내에 자회사(원고)를 설립한 후 소프트웨어 판매에 관한 독점권을 자회사에 부여하여 판매 및 유지ㆍ보수 등 일부 기능이 자회사로 이전되었고, 외관상 자회사가 모회사로부터 소프트웨어를 공급받아 국내 최종 사용자에게 재판매하는 구조를 가진 사안이었다.
물론, 한전판결 등 종전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비추어 본다면 거래 구조와 무관하게 실제 공급되는 소프트웨어의 기능 및 특성 등에 비추어 당해 소프트웨어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사실상 소프트웨어에 내재된 기술 또는 노하우를 도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사용료소득 해당 여부를 판단하여야 하므로, 거래의 구조가 일부 변경된 경우에도 위 판례의 법리는 동일하게 적용됨이 옳다. 왜냐하면 거래 구조가 일부 변경되었다고 하더라도 당해 소프트웨어의 기능 및 특성이 바뀌지 않았다면 세법에서 정하는 소득의 분류 또한 변경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만일 거래 외관의 변경을 이유로 소득의 분류가 사용료소득에서 사업소득으로 변경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는 국세기본법상 실질과세원칙
3)에도 위배되는 법해석이므로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의무자는 최종소비자가 아닌 국내 자회사이므로 국내 자회사를 기준으로 기술 내지 노하우가 이전되었는지 여부를 판별하여야 하였고, 이에 대상판결과 같은 사안에서도 종전 판례의 판단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상판결은 원고가 국내 고객사에 직접 솔루션 및 컨설팅 용역을 제공한 사정, 배포 계약상 비밀유지특약 및 별도의 소프트웨어 개발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비공개원시코드가 제공된 사정 등을 종합하여 원고에게도 쟁점 소프트웨어의 기술 또는 노하우가 이전된 것으로 명확하게 판단하였다.
대상판결 중 국내 자회사인 원고에게 쟁점 소프트웨어에 내재된 기술 내지 노하우가 이전되었다는 평가는 일부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으나(이하 ‘3.’에서 후술), 큰 틀에서 쟁점 소프트웨어에 내재된 기능이 장기간에 걸친 고도의 기술ㆍ경험ㆍ정보가 축적된 것이라는 점, 불특정 다수에게 공급되었다거나, 별도의 교육 및 지원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범용 소프트웨어가 아니라는 점 등 한전 판결 등 종전 대법원에서 제시된 판단 기준과 동일하게 쟁점 소프트웨어의 기능 및 특성 등을 중점적으로 고려하여 쟁점 소프트웨어의 도입을 단순한 상품의 공급이 아닌 기술 또는 노하우의 이전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거래 구조가 변경된 경우에도 기존 대법원 판례의 법리가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도 A사가 종전에는 직접 국내 고객사들에게 소프트웨어를 공급하였고, 고객사들은 A사에 지급하는 금원을 사용료소득으로 보아 원천징수한 것으로 확인된다. 만일 대상판결에서 쟁점 지급금을 사업소득으로 판단하였다면 소프트웨어의 기능 및 특성이 동일함에도 단순한 거래 구조의 변경만으로도 소득 구분이 바뀔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 과세당국의 입장으로서는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에 대한 과세권이 사실상 잠탈될 위험성도 존재하였다
4). 더욱이 최근 들어 대다수의 해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대상판결의 사안과 유사하게 국내에 자회사를 설립하여 소프트웨어의 재판매 및 유지보수용역을 제공하는 형식으로 거래 구조를 변경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상판결의 의의는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5).
2) (
대법원94누15653, 1995.04.11.) 판결, (
대법원97누4005, 1997.12.12.) 판결 등.
3)
국세기본법 제14조 제3항에서는 다단계 거래, 우회거래 등을 통한 조세회피행위를 규제하고 있다[동 조항을 직접 인용한 대법원 판례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나, 동 규정은 우회거래와 다단계거래의 양태를 띠는 조세회피행위를 대상으로 경제적 실질에 따른 세법상 효과를 주겠다는 것으로 기존 실질과세 규정(제1항, 제2항)의 특별규정으로 볼 수 있다(김석환, 조약편승과 실질과세원칙, 조세학술논집, 31-1, 264면 참조)].
4) 다만, A사가 법인세법 또는 한미조세협약상 사용료소득이 아닌 사업소득으로 평가될 경우 발생하는 세제상 혜택을 남용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거래 구조를 변경한 것으로 단정하여서는 안 되고, 납세자가 선택한 거래 방식은 기본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5) 이처럼 다수의 해외기업이 국내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거래 구조를 변경하는 원인은 고정사업장(Permanent Establishment, PE) 분쟁을 피하기 위한 목적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2. 대상판결은 이전되는 노하우 또는 기술까지 과세관청이 입증할 필요는 없다고 판시하여 과세관청 입증책임의 범위 및 한계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과세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칙적으로 과세관청에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납세의무자의 지배영역 안에 있는 것으로서 그 입증의 곤란이나 당사자 사이의 형평을 고려하여 납세의무자로 하여금 입증케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에는 입증 책임이 납세의무자에게로 전환되는 것으로 판시하고 있다
6). 이처럼 구체적인 사안별로 과세관청의 입증의 범위는 달라질 여지가 있다.
그리고 대상판결은 원고가 이전받은 노하우 또는 기술이 무엇인지를 과세관청이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하였다는 원고 측 주장에 대하여 “피고로서는 이 사건 지급금이 외국법인의 국내원천소득인 사용료소득에 해당한다고 보기 위하여, 이 사건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단순한 상품의 수입과는 구별되는 노하우 또는 그 기술의 도입에 해당하다는 점을 주장ㆍ증명하면 충분하고, 해당 노하우 또는 기술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주장ㆍ증명하여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여 위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이와 같이 대상판결은 소프트웨어의 도입에 관한 과세관청의 입증 범위 및 한계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는바, 이는 타당한 판단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에 내재된 노하우 또는 기술은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발현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내부적으로 작동되는 것으로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개발하는 대상인 것이다. 즉, 소프트웨어에 내재된 기술정보는 영업의 핵심이 되는 내용으로서 철저히 보호되고 있을 것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비공개 기술의 내용을 과세관청이 확인하여 증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다
7).
기존의 한전판결에서도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노하우 또는 기술이 프로그램의 제작기법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여 소프트웨어의 도입과 관련하여 해당 프로그램을 표현하는 언어배열인 비공개 원시코드를 제공받지 않은 경우에도 사용료소득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즉, 로직이나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언어와 같이 소프트웨어에 포함된 비공개 원리까지 이전되는 경우에만 노하우 또는 기술의 이전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과세관청이 이러한 기술 정보가 이전되었는지까지 모두 증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세관청으로서는 한전판결 등 대법원이 제시한 소프트웨어의 가격, 기능, 특성 등 여러 가지 간접적인 판단 기준에 관한 사실을 확인하여 당해 소프트웨어의 도입이 단순한 상품의 수입과 구별된다는 점을 입증하면 족할 것이므로 대상판결은 정당한 것으로 보이고, 동 판결은 소프트웨어 과세관청의 입증책임의 범위 및 한계를 명확히 판시한 최초의 판결로서 의의가 있다.
3. 대상판결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그 근거 중 국내 자회사를 기준으로 노하우 또는 기술이 이전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한 내용은 찬동하기 어렵다.
대상판결은 쟁점 지급금을 사용료소득으로 판단하면서 그 근거 중 국내 자회사인 원고가 국내 고객사에 직접 솔루션 및 컨설팅 용역을 제공하는 등 쟁점 소프트웨어에 내재된 기술 내지 노하우가 국내 자회사에도 이전되었음을 전제로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8). 그러나 한전판결 등 기존의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대상판결이 국내 자회사를 기준으로 쟁점 소프트웨어에 내재된 기술 내지 노하우가 이전되었다고 판단한 내용은 다소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우선 쟁점 규정 및 한미조세협약 제14조에서 소프트웨어의 도입 대가를 사용료소득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으나, 법인세법 기본통칙에서 해당 소프트웨어의 비공개 원시코드가 제공되는 경우나 원시코드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에도 국내도입자의 개별적인 주문에 의해 제작ㆍ개작된 소프트웨어가 제공된 경우, 소프트웨어의 지급대가가 당해 소프트웨어의 사용형태 또는 재생산량의 규모 등 소프트웨어의 사용과 관련된 일정 기준에 기초하여 결정되는 경우에도 쟁점 규정에서 정의하는 사용료에 해당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9). 이처럼 관련 규정 및 행정해석에 따르더라도 소프트웨어의 최종 사용자가 아닌 중간 판매자에게 기술 등을 이전하였는지 여부는 사용료소득 해당성을 판단하기 위한 고려요소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한전판결 등 기존의 대법원 판결에서 소프트웨어의 도입 대가를 사용료소득으로 평가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고, 동 기준에 따르더라도 소프트웨어의 가격, 기능, 특성 등을 중심적으로 고려하여 고도의 기술이 소프트웨어에 수반되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을 뿐, 거래의 모든 과정에 기술이 이전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즉, 소프트웨어 도입 대가의 소득 구분을 판단함에 있어서 소프트웨어 판매자가 소프트웨어를 직접 판매하는 경우와 중간 판매자를 거쳐 판매하는 경우가 달리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사용료소득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는 어디까지나 당해 소프트웨어의 가격, 기능, 특성 등이 중점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10).
비록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고가 국내 고객사에 직접 솔루션 및 컨설팅 용역을 제공하는 등 쟁점 소프트웨어에 관한 기술이 원고에게도 이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었으나, 만일 대상판결과 동일한 사실관계하에 단순 유통업무만 수행하는 내국법인 B사를 설립하여 A사와 원고의 거래 사이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거래 구조의 일부를 변경한다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대상판결의 취지에 따를 경우, 쟁점 소프트웨어의 기능 및 특성 등에도 불구하고 B사는 아무런 기술을 보유하거나 이전받지 않았으므로 A사가 B사로부터 지급받는 소득의 성질을 사업소득으로 평가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즉, 대상판결의 내용대로라면 쟁점 소프트웨어의 기능 및 특성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거래 구조에 따라 소득의 구분이 달리 평가될 수 있어서 납세자가 이를 악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명문의 규정이 없는 이상 거래 구조나 대가의 지급 방식 그 자체는 소득 구분의 일부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으나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11). 거래 구조가 어떠하든 간에 소프트웨어 도입 대가에 관한 소득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소프트웨어 그 자체의 기능 및 특성을 기준으로 판별하여야 할 것이다.
8) 물론 대상판결도 대법원 판결의 법리에 따라 쟁점 소프트웨어가 고도의 기술을 수반하고 있고, 단순한 설명만으로 이용 가능한 상용화ㆍ범용화된 소프트웨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점 등을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9) 법인세법 기본통칙 93-132…8.
10) 한전판결에서도 같은 취지로 당해 소프트웨어의 가격, 기술 수준, 상용화ㆍ범용화된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11) 이창희, 국제조세법(제2판), 7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