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취득목적 통지를 누락한 자기주식 취득의 효력
현행 상법상 자기주식 취득의 절차와 방법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경우 자기주식 취득의 효력 유무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절차 하자가 있을 경우 자기주식 취득 자체가 당연무효인지 여부는 관련 규정 개정의 취지를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이와 관련하여 학설이 대립한다.
구 상법(2011.4.14. 법률 제1060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41조 제1항은 “회사는 다음의 경우 외에는 자기의 계산으로 자기의 주식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여 각 호의 주식 소각이나 회사의 합병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기주식 취득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였다.
그런데 구 상법과 달리 현행
상법 제341조 제1항은 자기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고 어디에도 취득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는바, 이에 대하여 ① 일반적으로 자기주식취득을 전면 허용하는 방향으로 상법상 자기주식취득의 원칙이 변경되었다고 보는 원칙적 허용론
1)과, ② 상법상의 원칙은 여전히 자기주식의 취득금지라는 원칙적 금지론이 대립한다. 원칙적 금지론에 따르면 회사의 자기주식취득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현상에 불과하므로 비록 상법이 자기주식의 취득을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허용하였다고 해도 이러한 허용의 범위는 가능한 좁게 해석하려는 입장에 서게 된다.
2)
구 상법이 적용되던 시기에 대법원은 자기주식 취득 금지규정에 위반하여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당연히 무효라는 엄격한 입장이었다(
대법원 2001다44109, 2003.5.16., 판결). 그리고 현행 상법 시행 이후의 판례들 역시 『상법상의 절차와 방법에 따르지 않은 자기주식취득은 여전히 금지되어 있고, 그 금지규정을 위반하여 자기주식을 취득하거나 취득하기로 하는 약정 역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부산고법 2019나59236, 2020.9.23., 판결)거나, 『개정된 상법이 구 상법과는 달리 자기주식 취득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면적으로 이를 허용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상법 제341조와 제341조의 2 등은 자기주식의 취득이 가능한 경우를 제한적으로 열거한 규정이라고 보아야 하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는 자기주식의 취득이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자기주식취득 약정은 무효라고 봄이 타당하다』(서울중앙지법 2016가합523359, 2016.8.25., 판결)고 판시하여, 비교적 엄격한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대상판례는 취득목적의 통지를 누락하여 상법 시행령이 정한 절차 규정을 위반한 하자가 존재하더라도, 구체적 사정에 비추어 주주들의 공평한 주식양도 기회가 침해되지 않았다면 자기주식의 취득이 무효로 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로써 대법원은 자기주식 취득에 관한 상법상 절차규정을 위반한 경우라 하더라도 항상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규정 위반의 중대성 및 주주평등의 원칙이라는 입법목적의 달성 여부를 형량하여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러한 결론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절차규정을 위반한 자기주식의 취득의 효력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이상, 이는 관련 규정들의 입법취지를 고려한 해석을 통하여 절차하자가 중대한가 여부를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개정 상법이 자기주식 취득에 관한 규정의 형식을 금지에서 허용으로 변경한 점을 고려하면, 주주에게 공평한 주식양도 기회를 보장한다는 절차규정의 입법목적이 실질적으로 달성되는 이상, 사소한 절차위반만을 이유로 자기주식 취득의 사법상 효력을 부인할 이유가 없다.
1) 송옥렬, “개정상법상 자기주식취득과 소각”, BFL. 통권 제51호(서울대학교 금융법센터, 2012.1.), p.117.
2) 이영철, “자기주식의 취득 및 처분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 기업법연구 28.3(2014), pp.99-139.
나. 배당가능이익액의 범위 내에서 차입금으로 대금을 지급한 자기주식 취득의 효력
상법 제341조 제1항 단서는 자기주식 취득가액의 총액이 직전 결산기의 대차대조표상의 순자산액에서 제462조 제1항 각 호의 금액을 뺀 금액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언해석상 해당 규정은 자기주식 취득의 총액만을 규제할 뿐, 대금의 지급 방법을 전혀 제한하지 않는다. 즉 배당가능이익의 금액 범위 내라면, 자기주식 취득의 현실적인 지급 수단을 불문하고 자기주식 취득이 허용된다. 원심은 해당 규정의 취지가 ‘단순히 회계장부상 존재하는 배당가능이익의 금액 범위 내에서 자기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배당가능이익을 재원으로 자기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는 의미’라면서 현금 지급만이 허용되고 차입을 통한 지급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시를 했다. 그러나 이는 법률 문언에 정면으로 반하는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 그리고 현금 지급의 경우나 차입을 통한 지급의 경우나, 자기주식의 취득으로 인한 순자산의 감소 효과는 동일하므로, 원심과 같이 해석하더라도 자본의 충실성이 제고된다고 볼 수도 없다.
나아가 만약 원심과 같이 해석한다면, 현금 없이 실물자산만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경우 불가피하게 실물자산을 처분하여 현금을 마련해야만 자기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보유 중인 실물자산의 기대수익률이 신규차입금의 차입이자율보다 높다면, 신규차입을 통하여 취득자금을 지급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당연한 합리적인 선택이다. 따라서 대상판례와 같이, 자기주식 취득가액의 총액이 배당가능이익의 금액 범위 내라면 차입금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 자기주식 취득 대금이 업무무관 가지급금에 해당하는지 여부
업무무관 가지급금이란 ① 특수관계인에게 ② 업무와 무관하게 지급된 ③ 가지급금으로서 자금 대여액의 성격을 갖는 것을 말한다. 법인이 특수관계인에게 지급한 금원이 업무무관 가지급금에 해당할 경우, 법인이 각 사업연도에 지급한 차입금의 이자 중 일정액이 손금불산입된다.
대상판결은 이 사건 주식 거래 대금이 업무무관 가지급금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이 문제는 이 사건 주식 거래의 효력 유무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만약 이 사건 주식 거래를 무효로 본다면, 주식 대금은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된 것이므로 사실상 대여액의 성격을 갖게 되고, 따라서 업무무관 가지급금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한편 추후 환송심에서 대상판결 내용에 따라 자기주식의 취득 자체는 유효로 보더라도, 1심처럼 자기주식 취득 대금을 업무무관 가지급금으로 취급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자기주식 취득이 유효인 이상, 그 대금을 업무무관 가지급금으로 보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유효한 주식거래의 대가로 지급된 금원은 그 지급 원인이 확정된 것이므로, 그와 달리 이를 대여액 또는 가지급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유효하게 자기주식을 취득한 회사로서는 이를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소각하는 등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게 된다. 회사가 주식에 대한 완전한 처분권을 취득한 것이라면, 주식 대금은 자산취득의 대가로서 지급된 것이다. 이러한 경우 주식 대금은 주식매매계약이라는 법률상의 원인에 기하여 지급된 것이므로 대여금의 성격을 갖지 않음은 명확하다. 따라서 이를 세법상 업무무관 가지급금으로 취급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그리고 업무무관성 요건과 관련하여 1심에서는 자기주식 취득이 원고 회사의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보았는데, 과다적립된 이익잉여금을 해소하여 재무적 낭비를 제거하고자 한 취득 목적에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한 이후에 이를 어느 시점에 어떤 조건으로 처분할지는 스스로 자유로이 결정할 사항이므로, 단지 주식을 오랜 기간 동안 매각하지 않고 보유했다고 하여 이를 업무무관성의 증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 본다.
아울러 상법상 유효한 자기주식 취득의 대금을 세법상 업무무관 가지급금으로 처리한다면, 개정 상법이 자기주식의 취득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과도 균형이 맞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주식 취득계약이 통정허위에 불과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밝혀지지 않는 한, 함부로 그 계약의 효력을 부정하여 업무무관 가지급금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라. 자기주식의 취득에 대하여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이 적용되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이 사건 주식 거래에 대하여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이 적용되는지 여부를 직접적으로 판단하지 아니하였다. 이 사건 주식 거래의 효력 유무에 따라, 적용되는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이 달라진다. 이 사건 주식 거래가 무효일 경우, 원고가 주식 대금 상당액을 법률상 원인 없이 특수관계인에게 무상으로 지급한 것으로서 금전의 무상 대부ㆍ제공에 해당되어 법인세법 시행령 제88조 제1항 제6호가 적용된다.
반면 이 사건 주식 거래가 유효할 경우,
법인세법 제52조 제1항 및 동법 시행령 제88조 제1항 제2호의 무수익 자산 매입에 관한 규정이 문제될 수 있다. 1심은 이 사건 주식 거래가 유효하다고 하면서도 이는 ‘무수익 자산의 매입’에 해당하므로 제2호에 따라 부당행위계산부인 대상이 된다고 보았으나, 타당한 결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기주식의 취득을 무수익 자산의 매입으로 취급한 선례(
대법원 2017두44084, 2020.8.20., 판결)가 존재하기는 하나, 선례 판결에서는 ① 회사가 공개시장에 주식을 상장하지 못하여 자기주식을 취득하게 된 사정상 자기주식을 매입할 당시 장래에 해당 주식을 운용함으로써 수익을 얻을 가망성이 희박하였던 점, ② 실제로 원고는 자기주식을 높은 가격에 매입하여 결국 70%에 가까운 손실을 감수한 뒤 타에 양도하였던 점, ③ 원고는 자기주식을 매입할 법률상의 의무가 없었음에도 상당한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는 자기주식 매입거래를 하였던 점에서, 자기주식 취득을 무수익 자산의 매입으로 볼 만한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무수익자산’이라 함은 법인의 수익파생에 공헌하지 못하거나 법인의 수익과 관련이 없는 자산으로서 장래에도 그 자산의 운용으로 수익을 얻을 가망성이 희박한 자산을 말한다(
대법원 98두12055, 2000.11.10., 판결). 이 사건의 경우 원고가 자기주식을 매입할 당시 장래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 등을 예상할 수 있었다는 사정이 전혀 없다. 그리고 원고는 현재까지 자기주식을 처분하지 않고 보유 중인 상태인데, 추후 양도차익을 얻게 된다면 이를 ‘무수익’ 자산으로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울러 1심은 원고가 주식 대금 상당의 대출을 받아 이자를 지급함으로써 이자 상당액의 손실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 주식이 무수익 자산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나, 무수익 자산인지 여부는 그 자산 자체로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고, 그 자산 취득 대금 지급 방법에 따라 무수익 자산 해당 여부를 달리 판단하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원고가 현금으로 주식 대금을 지급하여 차입 이자를 별도로 부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차입이자액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금액 상당의 기회비용이 발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자기주식의 취득이라고 하여 반드시 무수익 자산의 매입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법인의 수익에 기여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는지를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