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지공시지가와 개별공시지가
토지의 적정가격을 평가ㆍ공시하여 지가산정의 기준으로 삼는 공시지가 제도는 1989.4.1. 법률 제4120호로 제정된 지가공시 및 토지 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이하 ‘지가공시법’)에서 도입된 이래, 2005.1.14. 법률 제7335호로 전부개정된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을 거쳐, 2016.1.19.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이하 ‘부동산공시법’)로 전부개정되어 현행법에 이르고 있다.
현행 부동산공시법상 국토교통부장관은 토지이용상황이나 주변 환경, 그 밖의 자연적ㆍ사회적 조건이 일반적으로 유사하다고 인정되는 일단의 토지 중에서 산정한 표준지에 대하여 매년 공시기준일 현재의 단위면적당 적정가격을 조사ㆍ평가하여 공시하는데, 이를 표준지공시지가라 한다(부동산공시법 제3조 제1항).표준지공시지가는 토지시장에 지가정보를 제공하고 일반적인 토지거래의 지표가 되며, 국가ㆍ지방자치단체 등이 공공용지의 매수 및 토지의 수용ㆍ사용에 대한 보상 등 그 업무와 관련하여 지가를 산정하거나 감정평가법인 등이 개별적으로 토지를 감정평가하는 경우에 기준이 된다(제8조, 제9조).
한편, 시장ㆍ군수 또는 구청장은 국세ㆍ지방세 등 각종 세금의 부과, 그 밖의 다른 법령에서 정하는 목적을 위한 지가산정에 사용되도록 하기 위하여 매년 공시기준일 현재 관할 구역 안의 개별토지의 단위면적당 가격을 결정ㆍ공시하는데, 이를 개별공시지가라 한다(제10조 제1항).
시장ㆍ군수 또는 구청장이 개별공시지가를 결정ㆍ공시하는 경우에는 해당 토지와 유사한 이용가치를 지닌다고 인정되는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표준지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토지가격비준표를 사용하여 지가를 산정하므로(제10조 제4항), 표준지공시지가는 개별공시지가의 산정 기준으로도 이용된다.
공시지가결정의 처분성과 하자의 승계 문제
표준지로 선정된 토지의 공시지가에 불복하기 위하여는 부동산공시법 소정의 이의절차를 거쳐 국토교통부장관을 피고로 하여 공시지가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
대법원 93누10828, 1994.3.8., 판결 등).
개별공시지가의 경우에도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볼복할 수 있음은 마찬가지이다(
대법원 92누12407, 1993.1.15., 판결 등). 즉, 대법원은 표준지공시지가결정과 개별공시지가결정의 처분성을 긍정하고 있다.
그런데 공시지가는 보통 조세부과처분이나 토지보상금결정 등에 지가산정의 기준으로 이용되고, 특히 표준지공시지가는 그 자체로 개별공시지가결정 시 산정 기준이 되므로, 공시지가결정은 선행처분으로서 위와 같은 후행처분을 예정하게 된다. 이 경우, 선행처분인 공시지가결정의 하자를 제때 다투지 못하여 불가쟁력이 생긴다면 후행처분의 불복 절차에서 공시지가결정의 하자를 다툴 수 있는지, 즉 하자의 승계에 관한 문제가 발생한다.
대법원은 하자의 승계와 관련하여, 두 개 이상의 행정처분이 연속적으로 행하여진 경우 선행처분과 후행처분이 서로 독립하여 별개의 법률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때에는 선행처분에 불가쟁력이 생겨 그 효력을 다툴 수 없게 되면 선행처분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당연무효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행처분의 하자를 이유로 후행처분을 다툴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법원 93누8542, 1994.1.25., 판결 등).
다만, 이 경우에도 선행처분의 불가쟁력이나 구속력이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입게 되는 자에게 수인한도를 넘는 가혹함을 가져오고 그 결과가 당사자에게 예측가능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에 비추어 선행처분의 후행처분에 대한 구속력은 인정될 수 없고, 후행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에서도 선행처분의 위법을 독립된 위법사유로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이른바 ‘수인한도론’).
공시지가결정의 하자 승계에 관한 판례의 태도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불복과 관련하여, 대법원은 이의절차를 거쳐 처분청을 상대로 그 공시지가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여야 하는 것이지, 그러한 절차를 밟지 아니한 채 개별공시지가결정이나 조세부과처분과 같은 후행처분을 다투는 소송에서 표준지공시지가의 위법성을 다툴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대법원 94누12920, 1995.3.28., 판결,
대법원 93누16468, 1995.11.10., 판결 등). 즉,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하자는 후행처분에 승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개별공시지가결정에 관하여는 이를 기초로 한 과세처분 등의 후행처분과 별개의 독립된 처분으로서 서로 독립하여 별개의 법률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후행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에서도 선행처분인 개별공시지가결정의 위법을 독립된 위법사유로 주장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판단하였다(
대법원 93누8542, 1994.1.25., 판결 등).
이는 개별공시지가의 경우 토지소유자나 이해관계인에게 개별적으로 고지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토지소유자 등이 개별공시지가결정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전제하기도 곤란할 뿐만 아니라, 결정된 개별공시지가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될 것인지 또는 불이익하게 작용될 것인지 여부를 쉽게 예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장차 어떠한 과세처분 등 구체적인 불이익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경우에 비로소 권리구제의 길을 찾는 것이 우리 국민의 권리의식임을 감안하여 볼 때 토지소유자 등으로 하여금 결정된 개별공시지가를 기초로 하여 장차 과세처분 등이 이루어질 것에 대비하여 항상 토지의 가격을 주시하고 개별공시지가결정이 잘못된 경우 정해진 시정절차를 통하여 이를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게 높은 주의의무를 지우는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고, 위법한 개별공시지가결정에 대하여 그 정해진 시정절차를 통하여 시정하도록 요구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위법한 개별공시지가를 기초로 한 과세처분 등 후행 행정처분에서 개별공시지가결정의 위법을 주장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수인한도를 넘는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으로서 국민의 재산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한 헌법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위 대법원 93누8542 판결 등). 즉, 수인한도론의 입장에서 대법원은 개별공시지가결정의 하자가 후행처분에 승계되는 것을 인정해왔다.
다만, 대법원이 개별공시지가결정의 경우 언제나 하자의 승계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납세자가 개별토지가격결정에 대한 재조사청구에 따른 감액조정에 대하여 더 이상 불복하지 아니한 사례에서, 대법원은 후행 양도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다시 개별토지가격 결정의 위법을 당해 과세처분의 위법사유로 주장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 96누6059, 1998.3.13., 판결). 위와 같은 경우에는 개별공시지가결정의 불가쟁력을 인정하더라도 수인한도를 넘는 가혹한 것이라거나 예측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이로부터 대법원이 개별공시지가결정의 하자 승계와 관련하여 수인한도론을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리 적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개별공시지가결정에 관해서만 적용되던 수인한도론은 이후 대법원 2008.8.21. 선고 2007두13845 판결(
대법원 2007두13845, 2008.8.21.)에서 표준지공시지가결정으로 확장된다. 납세자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이의재결에 불복하여 손실보상금의 증액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수용대상 토지 가격 산정의 기초가 된 비교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위법을 주장한 위 판결 사안에서, 대법원은 표준지공시지가가 인근 토지의 소유자나 기타 이해관계인에게 개별적으로 고지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인근 토지의 소유자 등이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전제하기 곤란하고, 인근 토지소유자는 보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표준지가 어느 토지인지 알 수 없으므로 표준지의 공시지가가 확정되기 전에 이를 다투는 것이 불가능하며, 인근 토지소유자에게 장차 표준지공시지가를 기초로 토지보상 등이 이루어질 것에 대비하여 항상 토지의 가격을 주시하고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이 잘못된 경우 이를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게 높은 주의의무를 지우는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수인한도론을 적용하여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하자가 수용재결에 승계된다고 판단하였다.
위 대법원 2007두13845 판결은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하자 승계에 대하여 수인한도론을 확대 적용한 최초의 판결로서,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위법을 후행 조세부과처분이나 개별토지가격결정을 다투는 소송에서 주장할 수 없다는 기존의 판례(위 대법원 94누12920 판결, 대법원 93누16468 판결 등)가 사실상 폐기되고,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경우에도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수인한도론을 적용하여 하자의 승계가 인정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임영호, ‘비교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하자와 수용재결의 위법성’, 대법원판례해설 제78호, 2009.7. 등).
대상판결의 의의
이후 표준지공시지가결정과 후행 조세부과처분의 하자 승계에 관하여 명시적인 대법원 판결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위 대법원 2007두13845 판결의 해석상 꼭 후행처분이 수용재결이 아니더라도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하자 승계에 수인한도론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었고, 원심판결도 이러한 입장에서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위법성을 재산세 등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다툴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원심이 원용한 대법원 2007두13845 판결은 표준지 인근 토지의 소유자가 토지 등의 수용 경과 등에 비추어 표준지공시지가의 확정 전에 이를 다투는 것이 불가능하였던 사정 등을 감안한 것일 뿐 이 사건과 사안을 달리하여 이 사건에 원용될 수 없다고 하면서,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재산세 등 부과처분의 취소소송에서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위법성을 다투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기존의 판례를 그대로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위 대법원 2007두13845 판결은 표준지공시지가결정과 수용재결의 관계로 그 의미가 상당히 축소되었고,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이해되었던 기존의 판례(위 대법원 94누12920 판결, 대법원 93누16468 판결 등)는 그 의미를 재확인받게 되었다.
그런데 현행 부동산공시법 제10조 제2항은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별도로 표준지에 대한 개별공시지가를 결정ㆍ공시하지 아니할 수 있고, 이때에는 표준지공시지가가 그대로 개별공시지가로 간주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처럼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이 개별공시지가결정의 성격을 함께 갖는다는 점과 개별공시지가결정에 대해 일반적으로 수인한도론을 적용하여 하자의 승계를 인정하는 판례의 태도를 고려하면, 납세자가 당해 표준지와 관련하여 조세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당해 개별공시지가인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위법성을 다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법 문언해석에 따른 논리적 귀결일 것이다.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하자 승계를 엄격하게 부인한 기존의 판례들은 모두 현행 부동산공시법 제10조 제2항 규정과 동일한 취지의 규정이 구 지가공시법(2000.1.28. 법률 제6237호로 일부개정된 것) 제10조의 2 제1항에 도입되기 이전의 판결이었으므로, 법률 개정에 따라 표준지공시지가결정과 조세부과처분 사이의 하자 승계에 위 대법원 2007두13845 판결과 같이 일반적으로 수인한도론을 적용하는 해석이 보다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경우, 원고는 이 사건 토지의 표준지공시지가가 공시된 이후에 이 사건 부동산을 경락받았고,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 등이 부과된 시점에는 이미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불가쟁력이 발생한 뒤였다. 수인한도론의 관점에서 볼 때, 표준지공시지가를 개별적으로 고지받지 못한 원고가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전제하기 곤란하고, 부동산강제경매절차에서 부동산의 경락인에게 그 토지의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이 시가감정액 등에 비추어 적절한 것인지 확인하여 잘못된 경우 정해진 시정절차를 통하여 이를 시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게 높은 주의의무를 지우는 것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은 재산세 등의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위법을 주장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수인한도를 넘는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인지에 관한 판단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단순히 대법원 2007두13845 판결과 사안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존 판례의 입장을 그대로 확인하고 말았다.
현행 부동산공시법 제10조 제2항에 따라 표준지공시지가도 당해 토지의 개별공시지가로 간주된다는 점, 대상판결과 같이 기존 판례의 입장을 고수하면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처분성을 인정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오히려 하자 승계 법리로 인해 권리구제의 실효성을 낮추게 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과거 지가공시법이 적용되던 때에 정립된 판례를 변경하여 표준지공시지가결정의 경우에도 후행 조세부과처분을 다투면서 그 위법성을 주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