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납처분 면탈죄 주체에 관한 규정 및 학설
구 조세범 처벌법(2010.1.1. 법률 제9919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제12조 제1항은 체납처분 면탈죄의 주체를 ‘체납자’로 정하고 있었으나, 조세범 처벌법이 2010.1.1. 법률 제9919호로 전부 개정되면서 제7조 제1항은 체납처분 면탈죄의 주체를 ‘납세의무자’로 규정하게 되었다. 국회의 개정법률안 검토보고를 보면, 구 조세범 처벌법상으로는 단순히 체납이 예상되기만 할 뿐이라면 체납처분 면탈죄로 처벌할 수 없는 불합리가 있으므로 이를 개선하고 처벌규정의 실효성을 제고하려는 취지에서 범죄행위의 주체를 체납자에서 납세의무자로 확대한 것이라고 한다.
대상판결 이전까지, 개정된 조세범 처벌법상 ‘납세의무자’의 의미에 관한 명확한 대법원 판례는 없었다(대상판결 취지와 동일한 하급심 판례로는 서울고법 2017노3601, 2018.4.19., 판결). 다만, 학설상으로는 ① 납세의무가 성립 및 확정된 이후의 자여야 체납처분 면탈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견해와 ② 납세의무가 성립하였다면 그 확정 전이라도 체납처분 면탈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었다. 여기서 납세의무의 확정이란
국세기본법 제22조에 규정된 개념으로, 추상적으로 성립된 납세의무의 내용이 징수절차로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구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대법원 2010두3428, 2011.12.8., 판결). 법인세, 소득세 및 부가가치세와 같은 신고납부 세목의 경우는 납세자가 과세표준 및 세액을 신고할 때, 상속세 및 증여세 등 부과과세 세목의 경우는 정부가 과세표준과 세액을 결정한 때에 납세의무가 확정된다.
① 견해와 ② 견해는 납세의무 확정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도 체납처분 면탈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결론에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납세의무가 성립한 이후의 자만이 체납처분 면탈죄의 주체가 된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하였다.
체납처분 면탈죄 주체에 관한 원심판결의 입장
대상판결의 원심은 학설과는 별개로 2018.4.20.경 현금 증여 부분에 관해서 피고인 1의 양도소득세 납세의무 성립 이전에도 체납처분 면탈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세범 처벌법이 2010.1.1. 체납처분 면탈죄의 처벌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었으므로, 원심은 그 개정 취지에 비추어 조세범 처벌법상 ‘납세의무자’라는 문언에 납세의무가 성립하기 이전의 자도 포함된다고 확대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체납처분을 면탈하기 위한 재산의 은닉ㆍ탈루 행위는 채권자취소권의 대상이 되는 사해행위와 유사한데, 사해행위 당시에 피보전채권이 아직 성립하지 않았더라도 그 채권 성립의 기초가 존재하고 가까운 장래에 채권이 성립할 고도의 개연성이 있으면 채권자취소권의 피보전채권이 될 수 있다(
대법원 2000다37821, 2001.3.23., 판결 등). 원심은 성립 전의 조세채권이라도 채권자취소권의 피보전채권이 될 수 있다는 민사판결의 결론이 체납처분 면탈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아, 납세의무 성립 전의 자도 체납처분 면탈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생각된다.
체납처분 면탈죄 주체에 관한 대상판결의 입장 및 그 타당성
조세범 처벌법이 개정되어 체납처분 면탈죄의 주체가 확대되었더라도, 형사법의 해석은 죄형법정주의원칙에 따라 문언해석에 충실하여야 하므로, ‘납세의무자’라는 문언의 의미에 납세의무가 성립하기 전의 자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또한 민사법의 해석에 있어서는 축소ㆍ확장ㆍ유추해석 등이 비교적 넓은 범위에서 허용되지만, 죄형법정주의원칙이 지배하는 형사법 해석에 있어서는 문언해석에 충실하여야 하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추ㆍ확장해석이 엄격하게 금지된다. 따라서 성립 전의 조세채권이 채권자취소권의 피보전채권이 될 수 있다는 민사판결을 형사법의 해석상 체납처분 면탈 행위의 주체를 정하는 데 원용할 수는 없다.
결국, 대상판결은 ‘납세의무자’라는 문언을 죄형법정주의에 충실하게 해석하여 납세의무 성립 이후의 자만이 체납처분 면탈죄의 행위 주체가 된다고 판단한 취지이다.
다만, 양도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에 납세의무가 성립하는 양도소득세의 경우와 같이 행위자의 행위 시점과 납세의무 성립 시점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대상판결의 결론에 따를 때 납세의무 성립 전에 미리 재산을 은닉ㆍ탈루하면 체납처분 면탈죄의 죄책을 물을 수 없다. 이 부분은 분명 현행법의 허점이다. 따라서 이를 보완할 입법적 조치가 필요한지에 관해서는 견해 대립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현행법 해석론의 관점에서, 조세범 처벌법의 문언이 ‘납세의무자’라고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고 납세의무 성립 전 재산의 은닉ㆍ탈루 행위가 있는 경우 과세관청은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하여 조세채권을 회수할 수 있으므로 형법의 보충성ㆍ최후수단성에 비추어 볼 때 납세의무 성립 전에 재산을 은닉ㆍ탈루한 자를 반드시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아야 할 당위가 인정되기는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대상판결의 해석론은 합리적이며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보론 : 체납처분 면탈죄의 다른 요건에 관한 문제
먼저, 체납처분 면탈죄는 실제 체납상태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체납처분을 받을 객관적 상태에 있어야만 성립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즉, 단순히 납세의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체적으로 체납처분 절차가 진행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은 체납처분 면탈죄의 처벌 범위가 부당히 확대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만약 위와 같은 요건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사해행위취소 소송의 대상과 체납처분 면탈죄가 성립하는 대상이 사실상 거의 일치하게 되어 형법의 보충성ㆍ최후수단성에 어긋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1이 과연 체납처분을 받을 객관적 상태에 있었는지 불분명하고, 따라서 피고인 1, 2에게 체납처분 면탈죄가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는 다소 의문인 면이 있다.
다음으로, 체납처분 면탈죄의 행위 태양은 ‘납세의무자의 재산을 은닉ㆍ탈루 또는 거짓계약을 하였을 것’이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 1의 증여는 거짓 증여가 아니었는바, 그렇다면 위 행위 태양 중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된다. 이와 관련하여 탈루란 재산의 소유권을 타인에게 이전함으로써 체납처분 대상에서 이탈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하고, 반드시 허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론이므로 증여는 여기에 해당한다. 다만, 사법상 진실한 행위까지 체납처분을 면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형벌의 과잉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 특히 대상판결은 거짓 증여가 아닌 진실한 증여를 받은 피고인 2를 체납처분 방조범으로 보아 처벌대상으로 삼았는데, 이 경우 수증자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한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자칫 대상판결의 취지가 확대되면 체납이 예상되는 납세의무자로부터 재산을 증여받거나 매수하면 모두 체납처분 면탈죄의 방조범으로 처벌될 위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조세범 처벌법 제7조 제3항은 “제1항과 제2항의 사정을 알고도 제1항과 제2항의 행위를 방조하거나 거짓 계약을 승낙한 자”를 체납처분 면탈죄의 방조범으로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32조의 방조범 처벌에 관한 규정은 조세범 처벌법에도 적용되는바(형법 제8조), 입법 형식적으로 보면 조세범 처벌법에서 체납처분 면탈죄의 방조범을 별도로 규정할 특별한 실익은 없어 보인다.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체납처분 면탈죄의 행위 주체인 ‘납세의무자’란 ‘납세의무가 성립하여 조세채무를 부담하는 자’를 의미한다고 분명히 밝힌 최초의 대법원 판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