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계산서 제도의 도입배경1)
1) 하태한, “동일한 가공거래 또는 전자세금계산서 발급분인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8조의 2 제1항의 적용 요건으로서 ‘공급가액 등의 합계액’ 산정 대상 및 방법”, 대법원판례해설 제114호(2017년 하), 2018, 법원도서관, 619-620쪽 참조.
재화나 용역의 흐름에 따라 매 유통단계에서 창출된 부가가치를 과세표준으로 하여 부과되는 부가가치세는 사업자가 자신이 공급한 재화나 용역에 대한 세액에서 공급받은 재화나 용역에 대한 세액을 공제함으로써 납부세액을 산출하는 소위 ‘전단계 세액공제법’으로 운영된다.
전단계 세액공제법 체제에서, 사업활동을 위하여 재화 등을 공급받은 사업자가 매입세액을 공제받기 위하여는 필수적으로 재화 등을 공급한 자로부터 세금계산서를 증빙으로 교부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재화 등을 공급받은 사업자가 공급자에게 세금계산서의 교부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게 되고, 매출 거래가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세원을 포착할 수 있다. 이처럼 세금계산서는 상호검증(cross-check)을 통해 조세포탈을 방지하는 중요 기능을 갖는다.
본죄의 범위
이처럼 세금계산서는 부가가치세 등 세금 납부 또는 환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사업자들로서는 허위세금계산서 발급, 수취하는 방식으로 세원을 은닉하거나 세금을 환급받아 조세포탈을 할 유인이 있다. 허위세금계산서를 이용한 조세포탈행위의 대표적인 유형은 ① 거래가 있음에도 공급자가 부가가치세 세원이 되는 매출이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고의적으로 세금계산서 발행을 회피하는 방법인 ‘무자료거래’와 ② 거래도 없이 허위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아 부가가치세 신고를 함으로써 매입세액을 부정하게 공제받는 방법으로 부가가치세를 포탈하는 방법인 ‘가공거래’이다.
후자인 허위세금계산서를 통하여 세금을 포탈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조세범 처벌법 제10조 제3항 제1호 및 특정범죄가중법 제8조의 2의 본죄 규정이 입법되었다. 그런데 본죄 규정은 행위자의 조세포탈 여부나 조세포탈 목적을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어, 조세포탈이 수반되어 있지 않더라도 어떠한 거래가 ‘가공거래’로 판단되기만 하면 본죄 규정에 의해 처벌될 위험성이 있다.
이와 같이 본죄에서 조세포탈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지 않은 이유에 관하여, 실무에서는 “거래 없는 세금계산서의 발급과 수취는 세금계산서 거래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세금계산서의 증빙서류로서의 기능을 해하므로 (조세포탈범이 아니더라도) 조세위해범으로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설명하고 있다.
2)
유사한 맥락에서 대법원은 본죄 규정의 입법취지가 “실물거래 없이 세금계산서를 수수하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세금계산서 수수질서를 도모하려는 데 있고 조세포탈 여부가 구성요건이 되는 다른 규정과 달리 위 규정은 세금계산서가 갖는 증빙서류로서의 기능을 중시하고 있다”고 보았다.
3)
애초에 세금계산서가 부가가치세 포탈을 방지할 목적으로 도입된 점을 고려하였을 때, 본죄의 적용 범위는 넓은 편이라고 볼 수 있고, 특히 계약이 체결되었더라도 계약이나 계약에 따른 거래의 내용이 다소 부실한 경우 자칫 거래의 실질이 부인되어 본죄로 기소될 수 있다는 점이 실무에서 종종 문제가 되고 있다. 대상판결 사안에서도 검사는 A회사 명의의 거래에 관하여 조세포탈로 기소하지는 않았지만, 당해 거래의 내용이 부실하다고 보아 거래의 실질을 부인하고 가공거래로 의율하여 본죄로 기소하였다.
2) 김종근, 『조세형사법 해설』, 삼일인포마인, 2021, 298면 참조.
3) (대법원 2012도7768, 2014.4.30., 판결)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거래의 실질을 부인하여 본죄로 의율할 수 있는 거래에 관하여 일응의 기준을 정립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먼저 대상판결은 세금계산서를 수취하거나 발급한 법인의 인적ㆍ물적 구성이 다소 부실하더라도, A회사 명의로 거래 관련 계약서가 작성되는 등 A회사가 독립된 경제주체로서 실재하면서 실제로 자신의 명의와 계산으로 사업을 수행한 이상 A회사 명의 거래를 가공거래로 볼 수 없다고 보았다. 즉 세금계산서 발급ㆍ수취의 주체의 인적ㆍ물적 구성은 가공거래의 주요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대상판결 사안에서 과세관청은 A회사의 실체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A회사에게 부가가치세 및 법인세를 부과하였고 A회사 명의 거래가 진정하다는 전제하에 거래상대방에게 부당행위계산부인 규정을 적용하였으며, 검사는 당해 거래로 인하여 A회사에게 부당한 이익이 귀속되었으므로 배임죄를 구성한다는 취지로 기소하였다. 이러한 과세 및 기소는 A회사 및 A회사 명의의 거래가 존재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해당 거래가 가공거래임을 전제로 하는 허위세금계산서 발급 관련 범죄와 양립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A회사 명의의 거래가 필요하였는지 또는 A회사에게 귀속된 이익이 정당한 것인지 등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고(이에 관하여는 별도의 항목, 즉 업무상 배임의 점에 대한 판단 부분에서 상세히 살펴본다), … , A회사 명의의 거래는 실물거래로서 그 거래당사자는 엄연히 A회사이다”라고 판시하였다. 즉, 어떠한 범죄 사안이 가공거래 사안인지, 혹은 거래의 실체가 존재함을 전제로 하는 배임죄 등 다른 범죄 사안인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고, 거래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각종 과세처분이 있었다면 섣불리 가공거래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금계산서 및 허위세금계산서 관련 본죄의 처벌규정이 조세포탈을 막기 위하여 도입된 점을 고려하였을 때, 조세포탈과 무관한 거래가 가공거래라는 판단은 신중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대상판결은 그러한 사안에서 가공거래인지 여부에 관하여 여러 객관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