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상 일반적 경과규정의 의의 - 신뢰보호원칙
법률이 개정되는 경우, 명문의 규정이 없는 한 신법은 장래의 행위에 대하여만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고, 개정 이전의 행위에 대해서는 구법이 여전히 적용된다. 조세채무는 각 세법에 정한 과세요건이 완성된 때에 성립하므로, 세법이 개정되는 경우에는 과세요건의 충족 시점을 기준으로 개정 이후에 과세요건이 충족된 분부터 신법이 적용되게 된다. 세법 개정 시 부칙의 일반적 적용례 즉, “이 법은 이 법 시행 후 최초로 납세의무가 성립하는 분부터 적용한다.”는 이러한 세법의 시간적 적용 범위에 관한 원칙을 규정한 것이다.
위와 같은 원칙은 세법의 개정 이전에 발생한 법률관계에 대하여 변경 후의 세법을 적용하여 과세하는 것을 금지하여 납세의무자의 신뢰를 보호하고자 하는 소급과세금지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소급과세금지 원칙의 의미를 조세법령의 제정 또는 개정이나 과세관청의 법령에 대한 해석 또는 처리지침의 변경이 있는 경우 그 효력 발생 전에 종결한 과세요건사실에 대하여 당해 법령 등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지, 이전부터 계속되어 오던 사실이나 그 이후에 발생한 과세요건사실에 대하여 새로운 법령 등을 적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고 제한하고 있다(
대법원 2005두2612, 2007.7.26., 판결 등). 즉, 과세요건의 충족 시점인 납세의무의 성립 시점이 개정 세법의 효력 발생 시기 이전인지 이후인지를 기준으로 진정소급과세와 부진정소급과세를 구별하고, 전자만을 소급과세금지 원칙의 적용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세법의 적용에 있어 납세의무자의 신뢰가 형성되는 시기는 납세의무의 성립 시점보다 크게 앞선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납세의무자가 녹색건축 인증 건축물에 대한 취득세를 감면 규정을 신뢰하고 해당 기준에 따라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했더라도, 취득세의 납세의무는 주택을 완공하여 취득하는 수년 후 성립하게 된다. 따라서 납세의무자가 주택을 건설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감면 규정이 불리하게 변경될 경우, 해당 감면 요건을 충족하도록 고가의 자재를 이용함에 따라 더 많은 건축비가 이미 소요되었더라도, 취득세 납세의무의 성립 시점을 기준으로 신법을 적용하여 취득세를 감면하지 않는 것은 부진정소급과세로서 원칙적으로 소급과세금지 원칙에 위반되지 않게 된다.
이처럼 구법질서에 대한 납세의무자의 신뢰는 과세요건의 충족 시점에 비로소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과세요건과 관련된 거래나 행위를 하는 시점부터 형성되므로, 납세의무의 성립 시점만을 기준으로 소급과세 여부를 판단하는 판례의 기준은 세법 개정 시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여 납세의무자의 신뢰를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합목적적 해석을 통하여 부진정소급과세로서 소급과세금지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 사례에 대해서는 신뢰보호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법률의 개정과 관련된 헌법상의 신뢰보호원칙에 따르면, 구법 질서에 대한 당사자의 신뢰에 보호가치가 있고 법률 개정으로 도모하는 공익적 목적이 당사자의 신뢰이익 침해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경우, 경과규정 등 당사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없는 개정 법률은 위헌에 해당한다.
요컨대, 세법상의 일반적 경과규정은 개정 세법이 헌법상의 신뢰보호원칙에 위반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만, 납세의무자의 구법 질서에 대한 신뢰가 단순한 기대에 불과한 경우에까지 구법의 적용을 긍정하는 것은 세법의 개정으로 추구하는 공익, 즉 세수를 추가로 확보하려는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세법 개정 이후 납세의무가 성립하여 원칙적으로 신법의 적용을 받는 경우에도, 납세의무자의 신뢰이익에 보호가치가 충분한 경우에 한하여 부칙의 일반적 경과규정을 매개로 구법을 적용하는 것은 법 해석상 헌법상의 신뢰보호원칙을 구현하는 것이다.
판례상 일반적 경과규정을 매개로 한 구법의 적용 요건
대법원은 일반적 경과규정을 세법이 납세의무자에게 불리하게 개정된 경우 납세의무자의 신뢰 내지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규정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대로, 일반적 경과규정을 매개로 납세의무자에게 유리한 구법을 적용하는 요건으로 ‘장래의 한정된 기간 동안 개정 이전의 원인행위에 기초한 과세요건의 충족이 있는 경우에도 특별히 비과세 내지 면제한다거나 과세를 유예한다는 내용을 명시적인 감면규정’이 존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대법원은 ‘납세의무자가 개정 전 법령에 의한 조세감면 등을 신뢰하여 개정 전 법령의 시행 당시에 과세요건의 충족과 밀접하게 관련된 원인행위로 나아감으로써 일정한 법적 지위를 취득하거나 법률관계를 형성’하였을 것을 요구하는데(
대법원 2015두36652, 2015.10.15., 판결 등), 이러한 요건들은 모두 납세의무자의 구법 질서에 대한 신뢰가 마땅히 보호하여야 할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평가하는 수단이다. 즉, ① 명시적 감면규정의 존재와 ② 이를 신뢰한 납세의무자의 원인행위 요건이 충족되면, 납세의무자의 신뢰이익에 충분한 보호가치가 있으므로 과세요건이 세법 개정 이후에 충족된 경우에도 구법의 적용을 긍정하는 것이다.
대상판결의 원심판결이 ① 구 조특법 제144조 등은 개정 전 지방세법 관련 조항과 일체로서 지방소득세 법인세분의 세액을 확정하는 규정들이므로 이 사건 경과규정에서 말하는 ‘종전의 규정’에 포함된다, ② 원고는 구 조특법 제144조 등을 신뢰하여 지방세법이 개정되기 이전에 이 사건 연구비 등을 지출함으로써 그 원인행위를 완료하여 법적 지위 또는 법률관계를 형성하였고, 그러한 신뢰는 법인세뿐만 아니라 지방소득세 법인세분에 있어서도 동일하다고 판단한 것은 각각 이 사건에서 위 ① 명시적 감면규정의 존재와 ② 이를 신뢰한 납세의무자의 원인행위 요건이 충족된다고 본 것으로서 이는 타당하다.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원심의 판단과 달리 ① 구 조특법 제144조 등이 이 사건 경과규정에서 말하는 ‘종전의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아 이 사건의 경우 ① 명시적 감면규정의 존재 요건부터 충족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구 조특법 제144조 등은 개정 전 지방세법 본칙의 규정이 아니므로 이 사건 경과규정의 ‘종전의 규정’이 될 수 없고, 개정 전 지방세법 본칙의 규정들은 단순히 지방소득세 법인세분의 산출방법에 관한 규정으로서 감면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에는 ‘장래의 한정된 기간 동안 조세감면 등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종전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일반적 경과규정의 해석론이 납세자에게 불리한 세법 개정에 대하여 헌법상 신뢰보호원칙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도외시한 채, 형식논리를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앞서 살펴본 대로, 세법상 일반적 경과규정은 납세의무의 성립 시점을 기준으로 부진정소급과세에 해당하나 납세의무자의 구법 질서에 대한 신뢰이익에 충분한 보호가치가 있는 경우 신뢰보호원칙에 따라 구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이다. 일반적 경과규정의 적용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납세의무자에 대하여 예외 없이 신법을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를 형량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세법 개정이 납세의무자에게 불리한 개정에 해당하는지는, 기존 대법원이 언급하였던 ‘개정 이전의 세법 규정이 장래의 한정된 기간 동안 조세감면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였는지’, ‘납세의무자가 세법 개정 이전에 과세요건의 충족과 밀접하게 관련된 원인행위를 하였는지’의 기준 외에도, 납세의무자는 해당 구법질서하에서 과세와 관련하여 어떠한 기대를 형성하였는지, 원인행위의 경위 및 그에 소요된 비용과 구법과 신법의 적용 시 납세의무자가 각각 부담하게 되는 세액 등을 비교하여 종합적으로 형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 경과규정에서 말하는 ‘종전의 규정’이 개정 전 지방세법 본칙의 규정만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원심판결이 적절히 판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구 지방세법에서 연구비 등에 대한 세액 공제ㆍ감면 규정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이유는, ‘지방소득세 법인세분’이 종전 ‘소득할 주민세’로 징수되던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구법질서하에서 지방소득세 법인세분이 법인세에 부가하는 형태의 세목이었기 때문이다.3)
3) 소득할 주민세는 1973년 최초 신설되어, 2014년 독립세로 전환되기 전까지 계속 법인세나 소득세의 부가세 형태로 징수되어 왔다.
따라서 과세표준이 법인세액인 이상 구 지방세법에 별도의 세액 공제ㆍ감면 조항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법인세액을 산출하기 위한 법인세법과 조세특례제한법의 세액공제ㆍ감면 조항 역시 지방소득세 법인세분의 세액 공제ㆍ감면 조항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나아가, 지방소득세 법인세분이 법인세액에 부가하여 이루어짐을 고려할 때, 구 조특법 제144조 제1항 등에 의하면 5년간 이월하여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고 본 신뢰가 단순한 기대이익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대상판결과 같이 일반적 경과규정의 ‘종전의 규정’을 해당 세법 본칙의 규정으로 한정하여 그 형식을 문제 삼아 “감면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원심판결과 같이, 구 조특법 제144조 등은 개정 전 지방세법 관련 조항과 일체로서 지방소득세 법인세분의 세액을 확정하는 규정들이므로 이 사건 경과규정에서 말하는 ‘종전의 규정’에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헌법상 신뢰보호의 원칙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합목적적 해석에도 부합할 것이다.
결국 대상판결은, 원심판결이 원고의 신뢰가 보호가치 있다고 본 것과 달리, 원고의 신뢰가 보호가치가 없고, 신법을 적용하더라도 신뢰보호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대상판결로서는 단지 법형식에 얽매여 “장래의 한정된 기간 동안 조세감면 등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종전의 규정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할 것이 아니라, 신뢰보호 가치 측면에서 보다 직접적인 판단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이 사건 원고는 이 사건 연구비 등의 지출 당시 구 조특법 제144조 등의 규정에 의하여 법인세와 지방소득세 법인세분이 감면되고 5년 간 이월공제가 가능할 것을 신뢰하고 이 사건 연구비 등의 지출 규모를 결정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개인들이 연말에 소득세 세액공제 항목을 고려하여 신용카드 사용액이나 개인연금 등의 불입액 등을 늘리는 것만 보더라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구 조특법 제144조 등의 규정은 국가가 조세특례를 통해 납세의무자의 일정한 행위를 유도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의 지출에 대한 의사결정은 실제 지출이 일어나는 시기보다 수년씩 앞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고가 기대한 지방소득세 법인세분의 감면 효과를 단지 반사적 이익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며, 나아가 이후 납세의무자들에게 조세특례를 통한 행위 유도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지게 할 수도 있다. 즉, 납세의무자들은 이후 언제든지 조세특례제도가 축소되거나 없어진다는 위험을 안고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심판결과 같이 합목적적 해석을 통하여 충분히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음에도, 대상판결은 이 사건 경과규정의 ‘종전의 규정’을 판단함에 있어 지나치게 법률 규정 형식에 치중한 나머지, 관련 규정들에 대한 납세의무자의 신뢰가 보호가치 있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살피지 못하고, 수많은 납세의무자들의 합리적인 기대를 저버리는 결과에 이르렀다.
향후에는, 대법원이 세법 해석에 있어 지나친 형식 논리를 앞세우기보다는 헌법적 가치를 고려하여 합목적적이고도 체계적인 해석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