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차세대시스템 개발이 과학기술활동에 해당한다고 본 과거 판례와의 충돌 문제
금융기관들이 과거 2010년 전에 소위 ‘차세대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지출한 위탁비용이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이미 다수 소송에서 다투어진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금융기관의 시스템개발은 대형 금융업의 실현, 영업 및 서비스 경쟁력 제고, 정보통신기술의 최적화와 효율화를 달성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기술적 진전을 이루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을 인정하여서 이를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13.8.22. 선고 2012구합31885 판결, 이후 대법원 2014.9.4.자 2014두7459 판결로 그대로 확정됨). 그리고 그 후에 선고된 대법원 2014.5.29. 선고 2014두2348 판결도 금융기관의 차세대시스템 구축에 소요된 위탁비용이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대상이라는 전제하에 재수탁업체의 전담 부서 보유 여부를 불문하고 재위탁 비용도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이하 위 판결들을 일컬어 ‘쟁점 선행사건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여러 금융기관들이 2011년 이후에 진행한 차세대시스템 개발이 과학기술활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대상판결을 포함한 다수의 판결들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21두56510, 2024.12.24., 판결, 대법원 2021두55951, 2024.12.24., 판결,
대법원 2021두56299, 2025.1.9., 판결, 이하 ‘쟁점 후행사건들’). 과연 어떤 측면에서 차이가 있기에 과거와 정반대의 결론이 나온 것일까?
쟁점 후행사건들에서 문제된 각 금융기관들의 차세대시스템들은 ‘대형 금융업의 실현, 영업 및 서비스 경쟁력 제고, 정보통신기술의 최적화와 효율화를 달성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쟁점 선행사건들에서 과학기술의 진전이 인정된 차세대시스템과 본질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 대상판결은 쟁점 선행사건들과 반대의 결론을 내리면서도 그 이유에 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고 있지 않고, 실제로도 그 차이를 설명할 만한 실증적인 근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대상판결의 판시에 아쉬움이 남는다.
나. ‘불확실성’ 기준과 관련된 대상판결 판시의 문제점
대상판결은 조특법상 과학기술활동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나 실패의 위험’이라는 결과의 불확실성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제시하면서, 이 사건 전산시스템 개발은 시행착오나 실패의 가능성이 없어 불확실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삼아서 이 사건 전산시스템 개발이 과학기술활동에 해당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시를 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대법원이 제시한 ‘결과의 불확실성’이라는 요건 자체가 관련 법령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데, 법령에도 없는 불확정 개념을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은 과세요건 법정주의 및 과세요건 명확주의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대상판결을 비롯한 쟁점 후행사건들의 판시를 자세히 살펴보더라도, 여기서 말하는 ‘실패의 위험’이나 ‘결과의 불확실성’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패의 위험성이 얼마나 커야 결과의 불확실성이 인정되는지 쉽사리 파악할 수가 없다. 우주발사체나 초전도체 기술 개발과 같이, 성공과 실패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으면서 그와 동시에 실패의 위험성이 높은 경우에만 ‘결과의 불확실성’이 인정되는 것인가? 이와 달리 당초 목표했던 기술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의 ‘실패의 위험’만 있는 경우에는 결과의 불확실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인가?
대법원은 이에 관하여 아무런 판단기준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대상판결이 금융기관들의 전산시스템 개발의 경우 불확실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점에 비추어 보면, 대법원은 위의 우주발사체 예시처럼 전면적인 실패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만 불확실성을 인정하겠다는 취지로 짐작될 뿐이다.
그런데 예를 들어 실무상 국세청은 최초로 개발된 의약품과 동등한 ‘제네릭 의약품’을 개발하는 활동도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는바, 이 경우는 대법원이 요구하는 만큼의 실패의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처럼 실무상 숙박업, 제조업, 식품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패의 위험성이나 결과의 불확실성 같은 것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지 않는 경우에도 세액공제가 인정되고 있는데, 과연 대상판결과 국세청의 실무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할 만하다.
한편 대법원은 대상판결에서, 과학기술활동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결과의 불확실성 유무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 사건 전산시스템의 개발에 결과의 불확실성이 없었다는 식의 구체적인 판단까지 내림으로써 실질적으로 파기환송이 아닌 파기자판의 성격에 가까운 판결을 내렸는데, 이는 대법원 판결 중에서는 형식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원심에서는 이 사건 전산시스템 개발에 실패의 위험, 즉 결과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취지로 판시를 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판결은 그에 관한 구체적인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대상 판결이 법률심인 대법원의 기능과 역할에 맞는 판결인지 의문이 든다.
다. 한국거래소 판결과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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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쟁점1 관련
한편 대법원은 최근 ‘한국거래소의 매매체결 시스템’ 개발은 구 조특법 제9조 제5항에서 정한 과학기술활동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대법원 2024.12.12. 선고 2021두48359 판결, 이하 ‘한국거래소 판결’).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이 사건 시스템에 필요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와 솔루션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였고, 범용 소프트웨어 도구 등을 활용하여 기존 시스템의 기능을 일부 개선하거나 변경하는 것을 넘어 이 사건 시스템의 알고리즘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하여 변경하였으며, 이 사건 시스템 개발과정에서 주식회사 D와 공동명의로 다수의 특허를 등록하였다는 등 그 판시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이 사건 시스템의 위탁개발이 구 조특법 제9조 제5항에서 정한 과학기술활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은 과학기술활동 및 연구개발 위탁비용의 판단기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하였다.
대상판결과 비교해 보면, 한국거래소의 매매체결 시스템과 이 사건 전산시스템 사이에 ‘실패의 위험’이나 ‘결과의 불확실성’ 측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특별한 사정은 쉽사리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상판결과는 달리, 한국거래소 판결에서는 대법원이 ‘결과의 불확실성’ 요건을 그다지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한국거래소 판결에서는 일견 ‘알고리즘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한 사정이나 ‘다수의 특허를 등록’한 사정이 중요하게 고려된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그렇다면 금융기관 차세대시스템의 경우에도 ‘알고리즘 전면 재설계’ 내지 ‘특허 등록’ 등의 사실관계가 인정된다면 과학기술활동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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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쟁점2 관련
한국거래소 판결은 구 조특법 시행령 부칙(대통령령 제24368호, 2013.2.15.) 제2조 제1항(이하 ‘이 사건 부칙규정’)은 “이 영 중 소득세 및 법인세에 관한 개정규정은 법률 제11614호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 시행 후 개시하는 과세연도 분부터 적용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 2013.1.1. 법률 제11614호로 개정된 조세특례제한법의 부칙은 제1조에서 해당 법률의 시행일을 2013.1.1.로 규정하면서, 제2조 제1항에서 “이 법 중 소득세 및 법인세에 관한 개정규정은 이 법 시행 후 개시하는 과세연도 분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종합하면 이 사건 개정규정은 2013.1.1.부터 개시하는 과세연도, 즉 2013 사업연도부터 적용된다고 판시하였다(대상판결의 원심은 이 사건 개정규정이 2014 사업연도부터 적용된다고 판시한 것과 차이가 있음). 이에 따라 한국거래소 판결은 2013사업연도 이후 분부터는 수탁업체의 전담부서등에서 직접 수행한 부분에 한정하여 이 사건 세액공제가 적용된다고 판시하였다.
라. 대상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조특법상의 연구개발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으로 ‘결과의 불확실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혔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이러한 ‘결과의 불확실성’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무엇인지에 관하여 아직 모호한 부분들 이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대상판결이 선고됨에 따라 연구개발비 세액공제의 적용 범위가 많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또한, 이 사건 개정규정의 적용에 따라 2013사업연도 이후에 이루어진 위탁연구개발은 반드시 수탁업체의 전담 부서에 의하여 직접 수행된 부분에 한해서만 세액공제가 인정되므로, 이를 고려하면 연구개발비 세액공제의 범위는 더욱 축소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연구개발에 대한 기업의 투자를 독려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제도의 존재 의의가 다소 희미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상판결의 판시에 아쉬움이 남는다.